<송진혁칼럼>'DJP구상'-논리와 名分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DJ.JP의 공동집권 추진을 신한국당이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다.정치인의 집권 추구는 당연한 것이고,선거를 앞둔 야당이 단일후보를 모색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두 야당의 연합추진이 분명 호남+충청의 지역 연합 성격이긴 하지만 5년전 3당통합의 산물인 신한국당이 이를 비난할 처지는 못된다.
또 체질과 성향이 딴판인 두사람의 연합이 노선도,정책도 무시한 야합이라고 하지만 세상따라 세월따라 변하는 것이 정치인이고보면 이 역시 우리 정치수준의 반영이라고 접어두자.
그렇다고 이른바 DJP연합구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납득시킬 논리와 명분도 부족하고 극복돼야 할 스스로의 모순도 있는 것같다.
우선 내각제 추진을 연합의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이 합당하냐 하는 점이다.국가의 근본문제라 할 권력구조의 선택은“우리나라는이러이러한 이유로 내각제(또는 대통령제)가 맞다”는 식의 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 옳다.그렇지 않고 우리나라에 는 대통령제가맞지만 내가 집권을 하자면 내각제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내각제다,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그러나 DJP연합구상에는 왜 내각제냐 하는데 대한 명분 서는논리가 안 보인다.내각제 저지를 공약으로까지 내세웠던 국민회의가 이제 와 내각제를 수용한다면 그 논리와 이유가 뭣인지 국민에게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이제 와 갑자기 내각제가 우리나라에 더 맞다고 생각하게 됐는지,아니면 오직 야당 단일후보가 되기 위해 내각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만약 후자(後者)라면 국가의 근본문제를 집권편의에 종속시킨다는 비난을면할 수 없다.대통령제가 더 맞는 다고 생각하면서도 집권을 위해 내각제를 추진한다면 그것은 정치가의 자세나 윤리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두 야당이 정말 내각제가 우리나라에 더 맞는다고 판단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내각제를 추진하는게 옳다.16대국회를 기다려 2년3개월간 대통령제를 한 후 개헌한다는 것은 이상한 얘기다.두 야당이 공동집권에 성공한다면 정계판도에 일대 폭풍이 올텐데 나라를 위해 더 낫다고 믿는 내각제를 집권세력이 임기초에 추진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집권초 내각제 추진을 공약한다면 어색한 권력분점론(分占論)은 회피할 수도 있다.사실 대통령제하의 권력분점이란 발상이 우리의 전통과 풍토에서 가능할지는 극히 의문이다.각료 임면권을 포함해 실제 권력은 대통령이 쥐고 있는데 두 정당이 5대5로 권력을 나눠 갖는다는 것이 기술적.현실적으로 가능할 것같지 않다.두 야당이 합당 아닌 연합을 한다는 것은 독자성.차별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인데 서로 성격이 다른 2핵(核)체제의 정부가 과연 팀웍을 이루며 한 방향으 로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단독집권인 YS정부에서도 부처이기주의니,불협화음이니 하며 국정표류와 정책혼선이 잦은 것을 생각하면 이런 의구심이 안들 수 없는 것이다.결국 대통령이 방향을 잡고 최종결정을내리게 될텐데 그렇다면 집권초엔 분점이더라도 얼마 안 가 .독점'체제가 될수밖에 없지 않을까.
또 분점의 방법도 문제일 것이다.외교.안보는 국민회의가 맡고경제는 자민련이 맡는다,이런 식이 될까.아니면 안보도 5대5,경제도 5대5,이런 식이 될까.
그리고 DJP연합의 추진방식에서 보는 문제점도 있다.지금처럼두 야당 수뇌들이 밀실.물밑협상으로 연합을 추진하는 방식은 소속의원과 당원.지지자들을 바지 저고리로 만드는 것이다.대통령제냐 내각제냐,어떤 당과 연합하느냐 않느냐의 문제 는 한 정당으로선 사활(死活)의 문제다.당간부.소속의원에겐 정치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몇몇 수뇌가 밀실협상에서 결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그저 따라만 오라고 해서야 공당(公黨)이 취할 최소한의 절차도 못된다.야당이 과거 3당통합을 왜 비난했는가.
지도자의 구령(口令)에 따라 내각제다! 하면 내각제로,“나대신 저분을”하면 저분을 밀어주는 그런.새끼 맨 돌맹이'로 지지자를 보지 않는다면 민주적 공론화의 추진방식이 돼야 한다.
이런 얘기가 두 야당엔 귀에 거슬리는 고언(苦言)일 수 있다.그러나 논리와 명분의 허점.현실적 문제점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만 DJP구상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믿는다.
(논설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