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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가정문화><전문가기고>23.형식화된 가족행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요즘 주말 오후 뷔페식당이나 호텔 연회실에 가면 흔히 볼 수있는 광경이 환갑.칠순잔치,자녀들의 백일이나 돌잔치,생일잔치등가족모임이다.
우리사회가 핵가족화.상업화하면서 집안에서 치러지던 크고 작은가족행사들이 집 밖으로 옮겨나가는 유행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요인은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우리사회의 전반적인 주거환경의 변화가 그중 하나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많은 일가친척이 모여 법석을 떨기 어려운 것이다.핵가족화로 집에서 음식을 장만할 일손이 부족하다는 점,특히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여성들이 음식장만에 많은시간을 할애하기 힘들어졌다는 것도 한몫을 한다.
게다가 외식문화의 발달로 돈만 주면 편리하고 깔끔한 방법으로남의 손으로 잔치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최근엔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 좀더 의미있는 기념일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각종 이벤트 업체도 속속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행사의 상품화는 음식장만과 뒤처리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준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 뒷면엔 가족행사의 진정한의미상실이라는 문제점이 따라온다.음식을 먹는 일에 치중하다보니대화를 나눌 분위기도 안되고 규모도 차츰 대형 화해 비용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그러다보니 초대받는 쪽 입장에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게 되지 않는다.이제 백일이나 돌잔치에 아이옷이나 작은 금반지를 담은 선물꾸러기를 내밀면 눈치가 보일 정도다.어디서건 횡행하는.봉투문화'가 가족행사까지 넘나들고 있다. 이제 가족행사 문화도 본래의 의미를 되찾는 변화가 시도돼야한다.대형화.상품화하는 가족행사를 소규모로,가정에서,정말 정을나눌 수 있는 모임으로 치러보자는 것이다.떠들썩하게 치르는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라 진정한 가족잔치로 변화된다 면 여성들의 부담거리인 음식장만 문제도 서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포트럭(potluck)파티'(각자가 한두가지씩 음식을 만들어가는 것)형태로 해결할 수 있다.
박 숙 자 〈국회여성특위 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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