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그들>긴잠깨는 화교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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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옛명성을 잃은 채 줄곧 쇠락의 길을 걸어왔던 서울.인천등지의 중국인 거리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곳곳에서 증.개축이 한창인데다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부쩍 잦다.서울마포구연남동 동교동로터리~연희동인터체인지 구간 도로 좌우측에 형성된 .차이나타운'. <약도 참조> 태평로와 서소문 일대의 화교들이 92년 한.중 수교이후 대거 몰려들기 시작,신흥 군락이 형성됐다.8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집.호떡집만 듬성듬성 보이던 이 거리는 지금.아리랑'.신정양행'등의 의류 무역업체 10여개와 신용협동조합등이 어깨를 다닥다닥 맞댄채.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곳에 주민등록을 둔 화교는 5백60명.실제로 거주하는 화교수는 더 많을 거라는게 구청측의 설명이다.이들 대부분은 남대문.동대문시장의 의류를 싸게 떼어다 대만.중국 도매상인들에게 넘기는 중개상들.언어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화교들이 택한 신직종이다.
화교사회가 기지개를 켜고 꿈틀대는 생동감은 국내 최대 규모인인천시중구선린동.북성동 일대의 차이나타운에서도 느낄 수 있다.
1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곳은 중국 특유의 향취로 유명하다.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붉은색 기둥의 기와 집과 홍등,이국적인 목조 건물은 한창때 1만여명이 살았던 시절의 분위기가 그대로 배어있다.요즘은 한국을 떠나 미국.유럽으로 흩어졌던 화교 역이민 현상까지 생겨나 단교이후 4백명까지 줄었던 화교수는현재 7백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기 시작한 현대식 건물과 전통 중국건물의 개축현장은 오랫동안 침묵해 왔던 이 거리의 사자후 같다.이곳 경기의 활성화와 외부변화의 수용을 의미하기 때문.그래서인지 다소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이던 눈빛도 그렇게 다 정할 수 없다. 카메라 플래시에 주저없이 몸을 맡기고 자기 음식점을 홍보해 달라며 적극적으로 말을 건넨다.
상술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중국인들.진취적인 화교들은이미 한국에 터전을 두고 오대양을 누비는 거상(巨商)으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리고 지금 차이나타운에 부는 변화의 몸짓은 그 열망을 앞당길게 분명하다.

<이 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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