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직무복귀] 열린우리 "심기일전"…한나라 "국민에 죄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청와대 움직임…환영행사 생략 "이젠 새 출발"

▶ 윤태영 청와대대변인(右)이 14일 오후 춘추관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오전 권양숙 여사와 함께 관저에서 TV로 헌재의 탄핵 기각 선고 과정을 지켜봤다. 盧대통령은 2개월여 동안 칩거해온 관저를 떠나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으로 향하던 도중 두차례 차를 세웠다. 녹지원 등에 모여 있던 청와대 관람객을 보고서다. 차에서 내린 盧대통령은 관람객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건넸다고 한다.

청와대 측은 이날 별도의 환영행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盧대통령이 "복귀하더라도 조용히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관계자는 "국민 모두가 예식장에서 신부 입장을 기다리듯 관심을 갖고 있지만 팡파르를 울리며 화려한 조명 속에 입장하지 않고 뒷문을 통해 조용히 입장하고 싶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대신 盧대통령은 수석.보좌관들과 비공개로 오찬을 함께 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盧대통령에게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의욕과 활기가 느껴졌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김우식 비서실장은 "어려움을 잘 감내한 대통령 내외분께 위로와 축하를 드린다"며 "새 출발하는 시점인데 앞으로 잘 보좌할 것을 다짐한다"고 인사했다. 식사 중 盧대통령은 "정부가 열정을 갖고 국민과 대화하고 입장을 잘 전달하려 노력해야 한다"며 정부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다른 참석자가 전했다.

낙관적인 전망 속에서도'혹시나…'하는 심정으로 탄핵심판 선고를 지켜본 비서실 관계자들은 盧대통령의 복귀에 맞춰 본격적으로 업무에 착수했다. 盧대통령은 각종 현안에 대한 수석.보좌관실의 추가 보고를 살피고, 15일 발표할 대국민 담화문을 손질하는 데 오후 시간을 할애했다.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열린우리 반응…"선거법 위반"에 한때 불안·초조

▶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左) 등 당직자들이 14일 오전 TV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기각 발표를 보며 박수 치고 있다. [조용철 기자]

14일 오전 10시28분 열린우리당 2층 회의실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다.

이날 정동영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 김원기 고문 등 고위 당직자 20여명은 25분 내내 숨죽인 채 TV 생중계를 지켜봤다. 시작은 불안했다. 헌재는 가장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선거법 제9조)을 지적했다. 순간 "설마…"하는 불안감이 회의실을 감쌌다. 하지만 심판이 진행되면서 '대통령 측근 비리'와 '국정 파탄' 등은 탄핵 사유로 삼기 어렵다는 판단이 이어졌다. 긴장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결국 TV 화면에 '대통령 탄핵 기각'이란 자막이 떴다. 당직자들은 손을 부여잡고 기뻐했다. 이미경.김희선 의원과 염동연 당선자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눈물도 글썽였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헌재의 기각 결정에 대해 "국민의 민주 수호 의지가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라며 환영했다. 한나라당에 대해선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는 등 압박도 했다. 기각 결정 직후 鄭의장은 곧바로 기자실을 찾았다. 그는 "헌재 결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온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 사필귀정의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상생의 정치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으나 이는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봐주기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며 "잘못된 정치적 행위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는 상생의 정치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했다.

千원내대표도 "국민이 살아 있고 헌법 질서가 수호되는 것을 입증한 결론"이라며 "탄핵소추를 주도한 야당은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당과 정부는 심기일전해 국정 안정과 민생 회복을 도모하고 개혁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한나라 반응…"헌법 정한 의무 盧대통령 지켜야"

▶ 14일 오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中)가 국회에서 탄핵심판 결과에 따른 한나라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형수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4일 헌재 결정 직후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골자는 '승복''대국민 사과', 그리고 '잊자'였다.

朴대표는 "그동안 탄핵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불안을 드리고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헌재 결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특히 "탄핵에 반대했던 국민도 계시고 오늘 결정에 이의가 있는 국민도 계실 것"이라며 "이제 과거를 접고 양쪽 상처가 조속히 아물어 국민 통합이 이뤄지도록 여야와 대통령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선 "헌재의 고심에 찬 결정의 참뜻을 헤아려 다시는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앞으로 헌법상 의무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이 없이 새로운 자세로 국정에 임해 달라"고 했다. 성명서는 A4용지 한 장 분량이었으며, 별도의 기자 간담회는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하기까지 당내 진통은 작지 않았다. 朴대표는 이날 오전 당 3역과 박세일 당선자, 이한구 정책위 부의장,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 등 주요 당직자들과 국회 대표실에서 TV를 지켜보며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다. 이 초안은 긴급 소집된 당 운영위원회의에 부쳐졌다.

그러나 비공개 운영위원회의에서 권철현 의원 등은 "이미 총선 과정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는데 또다시 대국민 사과를 하자는 등의 문제로 분열하면 당은 두번 죽는다"고 주장했다. 일부 영남권 의원은 "헌재도 대통령의 법 위반을 지적했는데 왜 사과해야 하느냐"고도 했다. 90분간의 논란 끝에 성명서는 가까스로 추인됐다.

한선교 대변인은 "탄핵을 지지했던 분들의 심정을 고려한 문구가 있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지만 국민에 대해 분명히 사과하자는 쪽으로 결론났다"고 말했다.

박승희 기자 <pmaster@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