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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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을희는 달팽이의 생태에 대한 구르몽의 관찰을 전했다.
암수를 한몸에 지니고 있는 달팽이가 교합(交合)할 때는 또 한마리의 달팽이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한 달팽이 몸 안의 암컷은 다른 달팽이 몸 안의 수컷과 얼리고,그 달팽이의 암컷은상대방 달팽이의 수컷과 동시에 얼리는 기묘한 상 관관계.성도착(性倒錯)의 상징과 같은 동물이 아닌가.
달팽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을희는 언뜻 웃었다.플라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평이 생각났기 때문이다..그는 언제나 화난듯 부은 표정이었으며 달팽이처럼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플라톤이 존경하여 마지않던 소크라테스도 눈살 찌푸린 괴이한 얼굴의 임자였다 한다.아버지는 조각사,어머니는 산파였다.소크라테스 역시 무능한 아버지와 유능하고 억센 어머니 사이에 자란 아들이었는지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란 그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소크라테스는현실주의적인 당시의 아테네사람중에선 드물게 이상주의적이요,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어느날 신전(神殿)에서 신의 말을 전하는 무녀(巫女)로부터.소크라테스 이상의 슬기로운 자는 없다'란 말을 듣고 놀란다.자신의 무지(無知)함을 깨닫고 있는 그는 이 신탁(神託)을의아하게 여겨 소위.지자(智者)'로 알려져 있는 숱한 사람과 만나 그들이 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소크라테스 이상의 슬기로운 자는 없다'고 한 신의 말은.소크라테스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임을 깨닫게 된다.
을희도 요즘 들어서야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음을 실감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네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음을 알라'는 가르침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대체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다른 것은 둬두고라도 큰아들이 맞닥뜨린.좌절'의 뜻을 알지 못했다.남보다 한층 더 총명하고 남보다 한층더 유리한 사회적 지위를 다진 아들이 겪어야 할 가정적 불행의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며느리 일만 해도 그랬다.무엇 때문에 성도착으로 빠진 것일까.인간에게 있어 섹스란 무엇이며 에로스란 무엇인가.인간에게 있어.절대 가치'란 무엇인가.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입고 호사하며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텐데,섹스에 탐 닉하여 쾌락을 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텐데,세상은 어째서 놀고 누리는 방향으로만 급격히 기울어져 가는가.
골똘히 생각하며 서랍을 뒤지다 야한 모양새의 연필깎이가 손에잡혔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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