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安定기조 다져나갈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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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지난해 9%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던 우리 경제는 금년 들어 뚜렷한 경기하강추세를 보이기 시작해 성장률이 6%대로 낮아졌다.6%대 성장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보면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으나 높은 재고 증가와 교역조건 악화를 고려한다면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들어서게 되면 초과수요압력이 완화되면서 국제수지와 물가에 부담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번에는 이같은 경기수축기의 순기능(順機能)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경상수지적자가 이미 지난 10월까지 1백95억달러에 이르렀고연말에 가서는 2백20억달러 정도에 이를 전망이다.
올 한해 기준으로만 보면 경상수지적자의 국내총생산(GDP)에대한 규모가 4.5%로 과거 80년보다 낮은 수준이기는 하나 앞으로도 상당기간 큰 폭의 적자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국제수지 방어는 매우 중시돼야 할 정책과제다.
한편 소비자물가는 4%대에서 유지되고 있지만 선진국은 물론 대만.싱가포르 등의 물가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인데다 최근의 높은 임금상승과 원화절하의 시차효과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상당한 물가상승압력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 다.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은 엔화 약세라든가,반도체가격 폭락 등 외생적 요인에 어느 정도 기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 2년간 우리 경제가 공급능력을 훨씬 웃도는 고율성장을 누려온데다 구조적으로.
고(高)비용-저(低)효율'체질이 개선되지 못한데 있다.
일반적으로 적정수준 이상의 성장을 지속하게 되면 초과수요압력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이러한 고(高)인플레이션은 임금.금리.지가 등 생산요소비용의 상승을 가져와 기업들도 장기적안목에서 경영을 합리화하고 기술개발투자를 늘리기 보다 인플레이션 환경에 편승해 외형확장에 치중함으로써 기술이나 품질경쟁력의향상 노력을 소홀히 하게 된다.최근 경상수지적자 확대와 물가불안은 장기간에 걸친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운용과 기업들의 구조조정노력이 미진한 데 따른 구조적 취약 성이 하강국면에 접어들면서본격적으로 가시화된데 따른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따라서 우리경제의 어려움은 경기순환적 요인보다 구조적 요인에 보다 크게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고비용구조를 타파하고 지금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고성장에의 집착을 버리고 우리의 공급능력에 맞춰 지출수준을 낮춰야 한다.
거시경제정책운용에 있어 안정화노력이 강화돼 우리 경제에 남아있는 초과수입압력이 해소되고 또 기업들의 경쟁력강화 노력도 배가될 때 오늘의 어려움은 분명히 구조조정의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중장기적 안목에서 저성장을 수용 하고 지속적으로 확실한 안정기조를 선택한다면 2000년에 가서는 국제수지가균형에 접근하고 물가도 2~3%대의 안정을 보임으로써 균형금리도 한자리수로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안정기조의 선택은 고통스런 일이나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원적으로 개선해 오늘의 경제난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65년 이후 연평균 12%의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던 일본이 70년대 들어 급속한 대내외 여건변화로 고성장이 한계에 이르자 종래 성장일변도의 정책운용에서 저성장기조로 전환해 경제의 구조조정을 통해 오늘의 경쟁력 기반을 갖게 됐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다.
이강남 한국은행 조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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