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오마하의 ‘현인’과 월스트리트의 ‘식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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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의 활동 무대인 오마하는 월스트리트로부터 무려 2000여㎞나 떨어진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다. 오마하를 둘러싸고 있는 네브래스카주와 아이오와주는 미국의 곡창 지대로,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산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온통 옥수수 밭뿐이다. 우리로 말하면 만경평야 한가운데 있는 김제시쯤에 해당한다.

금융산업과 전혀 어울릴 듯싶지 않은 이런 시골에 자신의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를 두고 있다. 그러니까 번지르르한 월스트리트 금융인들 눈에는 버핏이 촌뜨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버핏은 주식 투자와 관련해 월스트리트 사람들에 비해 하나도 못하지 않다. 그가 쌓은 엄청난 재산이 웅변적으로 말해주는데 그의 주식 투자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저평가된 주식을 쌀 때 매입해 가격이 오르면 파는 방식인데, 물론 대다수 투자자도 이렇게 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의 투자 호흡은 매우 길다. 길게는 30년까지 내다보며 주식을 사고판다. 그래서 10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지 않을 거면 아예 주식을 사지 말라는 철학을 전파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원칙을 꾸준히 지켜옴으로써 그는 오늘날 성공을 일궈냈다.

버핏은 자신의 이런 투자를 가리켜 가치투자라고 부른다. 가치투자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주식 중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으로 미래 가치를 현재에 투자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정석 투자로서 넣다뺐다를 반복하는 월스트리트 사람들의 투자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당장의 투자 이득에 눈이 먼 사람들은 이렇게 긴 호흡을 할 수 없다. 이들은 단타매매에 치중하게 되고, 여기서 발생할 위험 가능성을 금융공학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최고의 수학으로 무장한 이론들을 등장시켜 자신들의 탐욕을 끊임없이 채우고자 했다.

그러나 금융공학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퍼질수록 금융산업은 궤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수식을 앞세운 파생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파생상품이란 위험 부담을 떨구기 위해 만든 상품이지만 위험 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위험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일종의 폭탄 돌리기로서 경기가 좋아지면 위험 가능성이 줄어들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그 폭탄은 폭발하고야 만다. 그럼에도 폭탄 돌리기가 계속돼온 것은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 성실하게 일하며 뭔가를 생산해 왔던 제조업자들은 이들 앞에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그 폭탄은 마침내 폭발했고, 전 세계는 지금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세상을 갖고 놀다가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이는 재화(財貨)에 있어서 ‘화(貨)’의 위험성을 간과한 결과라고 본다. 노자의 『도덕경』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실체가 없는 ‘화’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질 않는다(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재화에서 재(財)는 농산품·공산품처럼 실체가 있는 ‘실물’임에 반해 화(貨)는 금융처럼 실체가 없는 ‘상징’이다. 소위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말은 실물경제가 단단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노자는 재화 중에 ‘화’만을 끄집어서 금융 같은 상징산업의 위험성을 일찍 간파했다.

버핏은 노자의 이런 철학을 굳게 믿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결단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시가로 440억 달러에 해당하는 전 재산 중 370억 달러를 빌 게이츠 재단을 비롯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게다가 50년 전에 3만2000달러(현 시가 70만 달러)에 구입한 낡은 주택에서 계속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버핏처럼 “황금(貨) 보기를 돌같이 하면 황금은 절로 굴러 온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일까?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