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를 본받자.”“우리 민족엔 이봉주 특질이 있다.” 친구나 이웃을 만나면 서로 이렇게 말함으로써 감격에 겨운 인사를나누자.이봉주의 이번 후쿠오카(福岡)국제마라톤 승리는 한국 사람들의 요즘 말라가고 있는 자신감에 새 물을 공급하는 구체적 샘이 되었다.
황영조의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우승 덕분으로 우리나라 마라톤은 오랫동안 실의에 잠겨 있다가 승리의 혼에 단번에 불씨를 지필 수 있었다.그 후 이봉주 선수가 지난 여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위를 차지하자 우리는 기쁘면서도 불길한 분 석에 우려를감출 수 없었다.다 이겨놓은 게임이었는데 막판에 우승자리를 내주고 만 것은 최종 순간에 단거리 선수처럼 스퍼트할 뒷심이 우리나라 마라토너에겐 없다는 사실의 발견이 그 이유였다.그러나 이 괴로운 예감을 어제 이봉주의 역주 (力走)를 2시간여 지켜보면서 우리는 일소(一掃)할 수 있었다.
다섯명 선두그룹에 섞여 뛰다가 31㎞ 쯤에서 이봉주가 선두로제치고 나가던 때에 우리는 환성을 질렀다.그러다가 38㎞에서 스페인의 후스다도 선수가 이봉주를 추격하자 우리는 다시 악몽의엄습(掩襲)을 받아야 했다.애틀랜타에서 남아프 리카공화국의 투과니 선수에게 당했던 그 악몽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41㎞에서 후스다도를 뒤로 물리고 다시 이봉주는 스퍼트했다.
우리는 이봉주가 이번 장도에 오르며“오로지 우승뿐,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 것을 신문에서 읽은 것을 기억해냈다.그러나 경기는 엎치락 뒤치락,후스다도 선수는 스타디움 안 트랙에 들어와 다시 1까지 바짝 추격했다.
이것을 다시 스퍼트해 따돌리는 이봉주를 보며 마라톤의 이러한.공포'를 맛보기 보다 그 이기는 주인공이 바로.짝눈'에다.짝발'에다.20대 대머리'에다.엉망 치아(齒牙)',이 모든 핸디캡을 갖춘 한국청년 이봉주라는 사실에 우리는 감격 하고 또 감격했다. 이봉주의 후쿠오카 쾌거를 정치.경제.사회.문화,이 모든 면에서.구성의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 자신을.한국의 실패'에서 구원해내는 하나의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