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서울을 '平壤學' 본산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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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잠수함사건으로 따귀를 맞은 것은 우리고 따귀를 때린 것은 분명 북한인데 그 북한의 사과문제를 두고 한국과 미국이 밀고 당기는 현실이 괴상하고 한심하다.우리측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납득할만한 조치'를 공개적으로 북한에 촉구한만 큼 이제부터미국이 북한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 나서게 됐다고 정상회담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맞은 것은 우리인데 사과를 끌어내는노력을 미국에 의지하게 됐으니 착잡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긴장이 다소나마 완화되고,다시 대화모색 국면으로 들어선 것은 다행이다.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북한이 저지르는 일에 속수무책인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러나 이번 일에서도 보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에게도 반성할 점이 많은 것같다.우선 무엇보다 무려 50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북한을 상대해오면서도 우리는 아직도.북한 알기'와.북한 다루기'에 서투르다는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북한에 당하고 겪었으면 북한을 상대로 밑지는 장사를 안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다 아는 것처럼 북한은 국제사회의 상식이나 예의와는 동떨어진집단이다.예측성이 극히 떨어지면서도 나름의 독특한 논리와 생존전략을 구사하는 집단이다.그런 북한을 50년이나 신물나게 겪었으면 우리 나름대로 북한을 상대하는 방법과 기술 이 개발.정립돼 있어야 마땅한데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것같다.따귀를 맞을 줄알았더라면 쌀을 보냈을리도 없을 것이고,북한이 핵파동을 일으킬줄 알았다면 바로 그때 李인모 노인을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 무지유죄(無知有罪)였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북한 바로 알기,북한 바로 다루기를 연구.개발.축적하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북한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많이 알고있어야 할 나라는 바로 우리다.우리의 생존과 번영,길흉화 복(吉凶禍福)에 가장 크고 직접적인 변수(變數)가 북한인데 우리 말고 누가 더 북한을 잘 알 입장인가.따라서 북한에 관해서만은 우리가가장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갖고있어야 하고,북한의 의도.행동.
실정에 관한 해석과 예측에 있어서도■ 한국이 가장 권위있는 곳이 돼야 마땅하다.그래서 북한을 알고자 하는 외국정부나 학자.
언론인들은 당연히 한국정부에 물어보고 한국에 와서 취재하고 공부하게끔 돼야 마땅한 것이다.과거 서독이 동독에 관해 가장 많이 알고,가장 정확한 예측 을 하는 나라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북한에 대해서는 그런 역량을 갖고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지금도 북한을 가장 잘 아는 나라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으로 돼있다.과거 못살던 60,70년대 뿐만 아니라 제법 살 만하다는 지금도 북한에 대한 연구와 정보량은 미국이 우리를 앞서고 있다.북한문제는 곧 우리문제 인데 우리문제를 알기 위해 미국정부에 물어보고,우리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가는 난센스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심지어북한학 수준에 있어 일본보다 뒤떨어진다는 지적마저 있다.
그러니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북한 정보에 관해 미국의 뉴욕 타임스나 일본 언론보도에 더 신뢰감을 갖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미국이 우리와는 달리 첩보위성과 첨단장비를 갖고 있고,제한적으로 관리나 연구자들의 입북(入北)이 가능하다는 점만 보면 안된다. 미국은 그런 강점 뿐만 아니라 한가지 예로 지난 45년이래 북한 방송을 일일청취하고 그것을 모두 영어로 번역해 연구자들이 손쉽게 볼 수 있게 서비스해준다.또 입수가능한 모든 북한 출판물도 영역(英譯)해 배포하고 있다.이런 기본적인 노력이 밑받침됨으로써 미국의 방대한 정보.지식의 역량 축적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북한알기에 열배.백배 더 힘을 쏟아야 할 우리는무슨 노력을 하고 있나.단순히 정보기관 능력차원의 문제가 아니다.우리가 조만간 미국같은 초강대국이 될 수도 없고,북한을 움직일 지렛대를 갑자기 가질 수도 없다.그렇다고 북한에 속수무책으로 밑지는 장사를 계속해서도 안된다.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벌써많이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북한을 바로 아는 작업에 빨리 착수해야 한다.바로 알아야 바른 대응도 가능하고,대북교섭력도 커질 수 있다.지금껏 북한을 잘 몰랐던 탓으로 쌀주고 뺨맞고 잠수함침투를 당하고도 사과조차 못받는게 아닌가.
하루빨리 서울을.평양학(平壤學)'의 본산.메카로 만드는 노력이 전개돼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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