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우리경제,틀을 다시 짜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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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소년기를 지나 장년기에 접어들면 여러가지 변화가 생긴다.그러한 변화를 큰 흐름으로 보면 감속현상과 성숙현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몸과 마음의 속도가 둔화하는 한편 처신과 사려(思慮)가 깊어지고 어른스러워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경제가 바로 그러한 전환기적 진통을 겪고 있다.우리경제가 소득 1만달러의 고비를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게 됐다는 것은 그러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경제 발전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경제가 완 전고용점을 넘어서 고임금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래서 우리경제는 감속과 성숙이라는 두가지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경제성장은 9%수준에서 잘해야 6~7%수준으로 내려앉고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재산증식의 속도도 꺾이게 된다.그러한 속에서 경제를 여물게 해야 하는 것이다.경제가 성숙해 진다는 것은경제성장이 고용보다도 생산성 향상으로 이끌어지고 물가와 국제수지가 안정을 이루며 물질적 풍요와 의식수준의 선진화가 평형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경제의 당면과제는 그러한 변혁기에 잘 대응해 이른바지속적 안전균형성장체제로 연착륙(軟着陸)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착륙을 위해서 우리는 전환기에 어떻게대응해야 하는 것인가.
첫째,성장감속을 최소화해 경제활력을 유지시켜야 한다.그러자면물가.임금.금리 등을 낮춰 생산비를 싸게 해야 한다.그리고 임금상승을 자제하면서 생활수준을 높이려면 온가족이 일터에 나가야하며 금리를 낮게 하자면 더욱 근면 저축해야 한다.이와 더불어기업은 기술혁신과 합리화를 촉진해 산업체질을 고능률체제로 바꿔야 한다.그런데 우리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지 않은가.
둘째,욕구쪽을 다스려야 한다.성장이 감속해 공급능력이 줄어든다면 마땅히 욕구도 줄여야 한다.그동안의 고도성장기에는 공급능력을 키워 욕구를 충족시켜 왔지만 이제는 욕구쪽을 다스려 만족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이것이 이른바 성 숙사회의 균형감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우리는 지금도 지난날고도성장기의 고(高)욕구의 관성(慣性)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이때문에 우리나라의 국민지출은 국민생산을 매년 크게 초과하고있다.그 초과분이 바로 국제수지 적자라는 것이 고 또 인플레의근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경제정책은 소득이나 성장보다도.삶의 질'이 중심이 되도록 다시 짜야 한다.개발초기 단계에서는 경제성장이 되기만 하면그만큼 잘 살게 되었다.그러나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났다.왜 그런가 하면 지금부터의 경제성장은 물가를 올리고 교통난.환경난.
주거난,그리고 교육과 휴식공간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역작용이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역작용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경제성장은 삶의 질을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그런데 우리가 바로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는 소득은 선진국이 돼도 삶의 질은 낮을 수밖에 없는 이른바 고소득 저생활 국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경제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러한 경제난의 원인은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환기의 환경변화에 대한적응실패에 있는 것이다.그래서 온 세계가 호황(好況)을 누리고있는 판에 우리만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새로운 성장환경에 맞도록 경제의 틀을 새로 짜는 것이다.성장활력을 최대한으로 유지시키고 경제 각부문의 욕구를 자제토록 하며 경제운용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중심을 둬야 한다.그러한 방향에서 정부와 기업의 틀을 다시 짜고 국민들의 의식구조도 바꾸어야 할 것이다.
朴 昇 〈중앙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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