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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글라스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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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 여러분 앞에는 5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와인 잔에 올려져 있습니다. 잔에 담긴 와인의 향과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어느 유명 와인 글라스 제조업체가 개최한 와인 글라스 시음회가 열리고 있는 자리였다.
앞에는 볼이 매우 넓은 큼직한 글라스, 타원형의 글라스, 좀 더 작은 글라스 등 5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양의 글라스를 흔들어 향도 맡아보고 맛을 보기도 한다.

“그럼… 가장 마음에 드는 와인이 있었나요?” 사회자가 다시 묻는다.
사람들은 각자 좋아하는 와인들을 나름대로 찍는 듯 했다. 각 와인 잔에 담겨있는 와인들이 표현하는 향기와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을 가졌다. 어떤 와인은 향기가 더욱 풍부했고 어떤 와인은 산미가 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여러분이 마신 5개의 글라스에 있었던 와인들은 모두 로버트 몬다비의 피노누아 였습니다” 라고 사회자는 말을 한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듯 다시 글라스에 담긴 와인의 냄새를 맡아보고 맛도 보았다.

시음에 사용되었던 글라스는 레드 와인으로는 보르도풍 레드 와인 글라스와 버건디풍 피노누아 레드 와인 글라스, 화이트 와인을 위한 샤도네 품종을 위한 글라스와 리슬링 품종을 위한 글라스였으며 일반적인 두툼한 느낌의 유리글라스가 마지막에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리글라스에 담긴 와인에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던 것이다.

이 독특한 글라스 시음회는 수년 전 시행했던 유명 와인 글라스 메이커였던 리델(Riedel)에서 자신들의 글라스가 어떻게 다른지를 직접 보여준 행사였다.

리델 측에 따르면 와인의 색과 향기 체온의 전달을 막기 위해 와인 잔의 다리가 긴 것은 기본이고 쓴맛, 단맛, 신맛을 느끼는 혀의 부위에 따라 와인을 처음 맛보는 느낌은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와인 스타일에 따라 와인 잔의 모양과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즉, 인체의 구조와 와인의 특성을 감안하여 글라스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 이후, 진지하게 와인을 마시려고 했던 사람들은 글라스부터 구비하는 일부터 시작한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들은 고급 크리스탈 글라스가 필수아이템이 되었고, 와인 애호가들은 자신의 진열장에 포도품종에 따라 달라지는 글라스를 종류별로 사서 진열하기도 했다. 크리스탈 이기에 글라스가 약하다는 단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설거지 한번 하지 않았던 남성 와인애호가들이 와인 글라스만큼은 자신이 직접 닦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한번씩 만날 수 있었다.

요즘은 리델에 버금가는 슈피겔라우(Spiegelau)와 같은 강도 있는 튼튼하고 가벼운 글라스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하고 저렴한 가격대에서도 좋은 품질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유리로 만들어진 실속 형 글라스도 등장하여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 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와인 잔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일까?

사실, 와인 글라스가 달라졌다고 해서 그 본래의 맛이 달라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글라스의 모양에 따라 분명히 맛은 달라진다는 것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인데 가장 간단한 방법은, 화이트 와인을 소주잔과 화이트 와인 잔에 따라 맛을 비교해 보거나 맥주잔과 볼이 넓은 와인 잔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개인마다 느껴지는 강도는 있겠으나 분명히 차이를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이상적인 와인 잔은 아무런 문양이나 장식이 없는 크리스탈과 같이 맑고 투명한 것이 좋다. 와인 잔의 큰 볼은 와인이 공기와 더욱 쉽게 접촉하여 복합적이고 풍부한 향기를 더욱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고, 길쭉한 와인 잔의 다리(손잡이)는 체온으로부터 전달되는 열로부터 차단하여 적절한 온도에서 표현되는 최상의 와인 맛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와인 전문가들은 와인 잔을 잡을 때에는 볼을 잡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와인 스타일에 따라 글라스의 모양과 사이즈가 달라지는 사실에 대해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샴페인 글라스이다. 길쭉한 튜울립형 글라스는 끊임없이 올라가는 샴페인의 기포를 유지한다. 이는 시각적(별처럼 반짝이며 올라가는 기포)으로, 미각적(입안에서 느껴지는 거품이 주는 상쾌함)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와인1병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큰 고급 레드 와인 잔은 볼이 넓을 때 풍겨오는 향기를 더욱 많이 느낄 수 있기에 사람들은 선호한다. 물론 이 잔에 와인을 가득 채우는 것은 아니다. 상황 별 차이는 있겠으나 750ml 용량의 와인 1병을 가지고 6-7잔 정도로 나눌 수 있는 분량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가끔씩 연기가 자욱한 불고기나 삼겹살을 굽는 식당에서 아주 커다란 와인 글라스를 가지고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있다. 나도 물론 좋은 와인을 즐기려면 큰 와인 잔이 좋다고 생각하고 아예 잔을 들고 다니면서 마시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런 상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강한 양념들은 와인 잔을 금방 얼룩지게 하고 잔에서 맡게 되는 향기는 마늘과 같은 강한 양념과 육류의 비린내가 와인 향기와 뒤섞여지기 때문이다. 별로 유쾌한 향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 에서는 화이트 이든 레드 이든, 와인 잔의 높이는 낮고 볼이 작았을 때가 더욱 마시기 편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성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