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경색에 조선·건설 부문 직격탄…1조3000억원 차입금 이자도 못 갚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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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과 조선업이 주력인 재계 순위 71위의 C&그룹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채권단 공동관리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국내 유동성 악화가 중소 건설업체와 조선업체에까지 연쇄 파장이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C&그룹 측은 29일 “자금난 때문에 채권 금융기관의 공동관리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면서 “하지만 자산이 충분하고 연내에 만기가 되는 어음과 채권이 없어 부도날 것이란 소문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날 증시에서 C&그룹 주가는 채권단 공동관리설로 일제히 하한가를 기록했고, 대출을 해준 은행의 주식까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C&그룹이 워크아웃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서울 장교동 C&그룹 본사 로비 벽에 계열사 이름이 빽빽이 적혀 있다. [김경빈 기자]


C&그룹은 6000억원대의 은행권 대출 등을 합쳐 약 1조3000억원의 차입금이 있다. 매달 100억원대의 금융비용이 생기지만 몇 개월째 연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최종걸 전무는 “건설과 조선 경기가 나빠지면서 운전자금 부족으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며 “몇백억원대의 대출만 받는다면 회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의 시각은 다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2000억원대의 대출을 요구하고 있지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오래전에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을 신청하거나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했는데 미적거리다 화를 키웠다”고 말했다. C&그룹의 자금 악화설은 최근 일이 아니다. 연초부터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수차례 부도설이 돌았지만 그때마다 이를 부인했다. C&그룹은 임병석(47) 회장이 1990년 칠산해운(현 C&해운)을 모태로 설립했다. 이후 중공업과 건설업, 한강 유람선 사업, 유통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덩치를 키웠다.


특히 C&그룹은 지난해 4000억원의 설비 투자를 필요로 하는 조선업에 뛰어든 것이 화를 자초했다고 한다. 이 업체는 당시 선박 부품을 만들던 효성금속을 인수한 뒤 전남 목포에 8만9657㎡의 부지를 사 조선소를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조선소의 설립 공사는 현재 70%까지 진행된 뒤 전면 중단된 상태다. C&그룹 측은 “2000억원을 보유자금으로 투입했지만 금융권이 당초 약속했던 대출을 해주지 않아 진척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C&그룹은 이 조선소에서 만들 선박 62척을 수주하고 이미 2억 달러의 선수금도 받았다. 조선업계에서는 “해외 선주사로부터 계약 취소에 따른 손해배상 등 국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신뢰도 추락까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C&우방건설의 부진도 그룹의 자금줄을 말라붙게 했다. C&우방건설은 수도권과 경북·대구에 지은 아파트가 분양되지 않아 약 1700억원의 미분양 대금을 떠안고 있다. 또 C&그룹 측은 C&우방랜드 등을 매각하기로 했으나 인수합병(M&A)시장마저 얼어붙어 파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C&그룹 측이 강도 높은 회생 방안을 내놓는다면 채권은행들이 공동 대응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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