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림&필링>한국영화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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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말하자면 이건 서문이다.갑자기 모두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너무 많은 영화들이 일시에 개봉되고,놀랍게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같았던 국제영화제를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치러내고,이름만알던 영화감독들이 기꺼이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오 고,불과 10년전만 해도 영화에 관심이 없던 수많은 기업들이 영화사업에 투자하고,단편영화제에 79편의 영화가 신청하고,영화관객들은 일시에 전문가가 된 것처럼 거만을 떤다.
말하자면 우리는 .시네마천국'을 맞은 것일까.어쩌면 그럴지도모른다.1년에 외화 4백50편이 수입되고,매일 6편의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된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나라에 영화의황금시대가 도래했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우선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아시아영화에 대한 서방세계의 관심은 낯선것이 아니다.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으면서 일본영화는 서방세계 모더니즘의 영화사조 속으로 뛰어들었다.지난 55년 칸영화제에서 사타지트 라이의 .길의 노래'가 수상하면서 인도영화는 세상에 알려졌다.
6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영화에 대한 관심과 70년대의 서독영화를 거쳐 80년대에 중국 첸카이거의 .황토지'와 대만 후샤오시엔의 .펭쿠이에서 온 소년'으로 두개의 중국영화가 세상의 중심으로 나섰다.95년 홍콩에서 왕자웨이 감독의 . 중경삼림'은단숨에 전염병을 만들어냈다.그 사이 어디에도 한국영화는 없다.
여전히 한국영화는 아시아영화의 변방이며,심지어.일시적인' 아시아영화의 유행은 끝나가고 있다.
그 속에서 세계가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영화가 아니라 영화.시장'에 있는 것이다.전세계에서 할리우드 영화 직배수입이 90년이후 매년 10위권에 드는 나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 유통구조가 거의 암시장에 가까운 나라,기업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겠다고 뛰어드는 나라,영화의 역사가 거의 1백년에 이르면서 단 한번도 이른바 3대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라,이건 정말 신기한나라다. 대만의 영화연구자들이 한국영화산업을 실패한 모델로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저 분개하기만 한다면그건 정말 의미없는 일이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한심한 매판영화비즈니스맨들과 위험하게도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사로잡혀비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잘되고 있다고 .우기는' 현장과 그 이웃들,엉망진창인 제도와 그것 을 고수하려는 관료들 사이에서 찾아온 이 기이한 .시네마천국'은 정말 천국보다 낯설다.나는 이것이 있는 힘을 다해 함께 토론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이 서문은 이제부터 내가 열거하려는 그 수많은 근심과 투정을 모두 탁자 위에 올려 함께 대화하려는 그 말싸움걸기의 시작이다.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건 서문이다.
◇필자 약력 ▶영화평론가▶59년 서울생▶성균관대 신방과 졸업▶현재.키노'편집장,.임권택론'지음 <영화평론가 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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