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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인간도 어떤 기간 동안 암.수가 교체된다면….한가지 분명한 것은 암컷은 수컷을,그리고 수컷은 암컷을 더 잘 이해하게 되리라는 점이다.교대성자웅동체(交代性雌雄同體)인 굴의 생태는 남녀가 서로 한몸처럼 살 것을 일러준다.자연이 주는 교훈이다.
교훈은 또 한가지 있다.
암.수의 성질을 한몸에 갖춘 그 어떠한 자웅동체의 동물이라 할지라도 종족을 영속(永續)시키기 위해 수컷으로 활동하는 개체와 암컷으로 활동하는 개체가 반드시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암.
수가 따로 없으면 생산은 불가능하다.더욱 흥미로운 것은 수컷의능동성과 적극성이다.어떤 수컷이든 먼저 기다리고 있다가 암컷의등장을 맞이한다.암컷은 신기할 정도로 항상 수동적이다.이 수컷의 능동성과 암컷의 수동성이 어우러져 생식이 이뤄진다는 원리는남성의 여성화와 여성의 남성화 현상을 경고한다.
달팽이는 양성(兩性)동물이다.굴처럼 번갈아 암.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암.수 양성을 한몸 안에 지니고 있다.
구르몽은 달팽이의 성행위를 소상히 묘사했다.
…달팽이의 성기는 매우 발달돼 있다.페니스와 질(膣)은 한데달렸고 이것은 행위중 밖으로 노출된다.두마리의 달팽이는 밀착한채 상대방의 질에다 자신의 페니스를 서로 삽입한다.이 삽입에 앞서 달팽이는 여러 날에 걸쳐 기나긴 전희(前 戱)의 시간을 갖는다.두마리의 달팽이는 끈질기게도 상대방의 성기를 오래도록 서로 마찰하는 것이다….
달팽이의 이같은 이중 성행위에서도 교훈을 읽을 수 있다.
비록 암.수를 한몸 안에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생식하기 위해서는 다른 개체의 암.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공존의 구도다. 인간은 생물적인 공존의 구도를 예사로 깨려 한다.그 파괴는 흔히 이성(異性)의 이름으로 베풀어진다.
“이혼문제는 좀더 두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겠구나.” 을희는 무거운 말투로 마무리지으려 했다.그러나 맥은 묏바위 같았다. “고민할 만큼 고민했고,참을 만큼 참기도 했습니다.더 이상뜸 들여봐야 허송세월 할 뿐입니다.” “…좋은 사람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어쩔 수 없이 핵심을 건드렸다.
“죄송합니다.” 아들이 고개를 수그려 힘없이 말했다.
“아리영씨냐?” 칼로 자르는 듯한 을희의 물음에 맥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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