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클린턴 2期와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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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기 출범을 계기로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얼굴이 크게 바뀐다고들 하는데 이중 우리의 관심은 한반도정책 관련부서들이다.이들자리에 어떤 경력과 배경의 인물들이 들어서느냐는 것은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안타깝게도 이들은 한반도문 제와 관련해 골치 아픈 유산을 인계받게 될 것이다.북한대책에 관한 딜레마가그것이다.북한잠수함 침투사태 이후 미국정책은 교착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반도에 관한 클린턴행정부의 외교정책은 2개의 근간으로 이뤄져왔다.첫째로 북한 핵문제는 제네바합의로,둘째 한반도평화문제는 4자회담제의로 해결책을 모색해 왔다.그러나 요새 워싱턴 외교팀은 북한잠수함에 발목을 잡힌 느낌이다.경 수로건설지원등 제네바합의는 동결됐고,4자회담 얘기는 아예 거론조차 안되는상태다.리처드슨 하원의원의 평양방문계획이 보류되는가 하면 한국전의 미군전사자 유해발굴팀의 방북도 연기됐다.미.북한 미사일회담도 스톱이다.
잠수함사태 직후 국무부대변인은 『상황을 잘 모른다』며 엉거주춤했고,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남북한 양쪽이 모두 자제하라』는엉뚱한 반응을 보였던게 미국이었다.일단 미 국무장관의 발언은 실언으로 낙착된 것 같다.오히려 그 이후 마치 역작용인양 미국의 대북(對北)자세가 단호해졌다.로드 국무부차관보가 급거 서울로 달려가 한.미공동대응을 다짐하는가 하면,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도이치 중앙정보국(CIA)국장도 서울에 가서 이를 재다짐했다.크리스토퍼장관은 그후 미국 육군 사관학교 연설에서 북한의 도전이 있을 경우 군사적 대응도 고려하겠다고까지 강경자세로 선회했다.레이니 주한미국대사도 북한의 사과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 잠수함사태와 관련,이제 미국은 외형상 한국정부와 공동보조를취하는 모습을 갖춘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한국과 미국 두 나라는 한 입이 돼 북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나결과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그 과정에서 두 나 라의 입장이 견지될지 관심거리다.사과는 북한이 해야 하는 것이고,또 현재로서는 순순히 응할 자세도 아니다.아울러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한.미 공동보조에 대한 작용을 도모할 개연성도 크다.이미 최근유엔참석 명분으로 뉴욕을 방문한 북 한 외교부 미주국장 이형철이 미국 태도변화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본래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줄곧 신축적이었다.치료에 비유하자면 대증(對症)요법이다.아웅산테러 이후에는 북한에 대해 테러재발방지 다짐을 요구하고,한반도긴장이 악화되면 남북간의 직접대화를 강조하고,핵확산금지에 관한 미국의 리더십 이 위협당하면 제네바합의를 마련했다.신축성은 필요에 따라 원칙과 멀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미국은 한국정부와의 공동보조의 필요 때문에북한의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과연 이것이 성취가능한 목표냐는데 회의적일 수 있다.
클린턴외교는 정책의 일관성이 없고,임시방편적이라는 평가를 국내외에서 받아온게 사실이다.최근 뉴욕타임스지는 사설을 통해 대통령선거에서의 클린턴지지를 선언하면서도 그의 외교를 비판한 바있다.리더십과 협의를 착각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었다.끌려다니는 외교에 대한 비판이다.
재선에 성공한 이상 클린턴은 정치적 부담이 사라졌다.사실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일은 잘 돼봤자 본전이다.혹시 선거를 앞두고 잘못되면 외교실패만 부각될 뿐이었다.이제는 다르다.북한이제네바합의파기 등 벼랑끝으로 미국을 몰아가는데 끌려다닐 필요는없다. 물론 북한의 국제무대 연(軟)착륙은 좋은 일이다.그러나우방 한국의 위상과 한국민의 정서는 더욱 중요한 고려대상이 돼야 한다.지금 벌어져 있는 사태에 대해 북한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신축성」을 발휘하는 것은 곤란하다.클린턴 2기의 한반도정책이 원칙에 확고할 것을 바랄 뿐이다.지금의 원칙은 사과와 남북대화 실현이다.
(미주총국장) 한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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