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한국학연구 자금지원 論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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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92년 설립돼 해외에 한국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해가고 있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정원)이 과거 군사권위주의 시기에 형성된 미국 학자들에 대한 정보공작 이미지 때문에 미국에서 많은어려움을 겪고 있다.미국에만도 매년 몇백만달러씩 지원하고 있으나 브루스 커밍스(노스웨스턴대).짐 팔리어스(워싱턴대)교수등 미국내 한국학 권위자들이 지원방식에 의혹을 제기해 재단 관계자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 문제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른 것은 한국전쟁 연구의 권위자 커밍스교수가 지난 봄 일본정책연구소가 간행한 회원용 보고서 「NO.7」에 「남한의 학계로비」라는 글을 실어,군사정부시절 한국정부의 미국학계에 대한 로비와 그후 한국국제교류재단 책임자의 발언등을 근거로 한국학 지원의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부터다.이어 최근 전미교육협회가 발행하는 영향력있는 일간 고등교육신문이 지난 10월4일자로 재단과 한국정부의 관계,지원의 자의성등을 거론하면서 이 재단의 지원이 특정대학.
인물에 편중돼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심지어 일본정책연구소소장 찰머스 존슨의 말을 인용해 『미국 학자들의 영향력을 돈으로 사려는 명백한 시도며 그것은 분명히 로비자금』이라고 못박고있다. 그러나 문민정부 등장으로 이런 시각은 미국내에서 과거에비하면 많이 완화됐다고 지적한 이 기사는 한국교류재단으로부터 지원받는 대학과 교수는 사실상 연구에 어떤 압력이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도 동시에 인용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해는 과거 군사정부가 행한미국학계 로비의 기억보다는 ▶초기에 적은 자금과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몇몇 집중지원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재단 운영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하거나▶커밍스의 『한국전쟁 의 기원』을 비판한 국내 소장학자의 책을 재단이 번역하는등 다소 감정적으로대응한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비자금이라는 이유로 이 재단의 지원을 거부하는 커밍스교수가요구하고 있는 것도 일본처럼 미국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지원이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연구지원을 통한 한국정부및 이 재단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고등교육신문의 보도가 부정확한 정보에 기초해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일반적 인상을 기술하고 있다며 장문의 반박문을 보낼 예정이다.▶재단은 정부기관이 아닐뿐만아니라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지원받은 대학이 독립적으로 연구하고 있고 지원도 나름대로의 객관적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는 점▶제한된 지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성과있는 연구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미국학자들에 의한 위원회 구성은 당분간힘들다는 점등을 담은 이 반박문을 신문에 게제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같은 논란의 배경에는 미국학자들의 일종의 오만과 함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감지된다.불리한 여건에서도 미국에서 한국학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학문내적 논리에 입각한 장기적이고 일관성있는 계획에 따라 대처해야 함은 물론 세계적 수준의 학문적 성과를 산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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