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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승부처를 가다 ① ‘50개 주 축소판’ 오하이오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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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일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간에 초박빙 접전이 계속되고 있는 경합주(swing state) 몇 곳에서 승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북부 산업벨트를 대표하는 오하이오(선거인단 수 20명)와 남부의 전통적 접전지 플로리다(27명) 및 이번 대선에서 승부처로 급부상한 버지니아(13명) 등 3개 주가 태풍의 눈이다. 본지 특파원들이 이들 3대 격전지를 직접 찾았다.

 “조지 W 부시가 집권한 지난 8년 동안 우리 주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만 20만 명입니다. 지금 유권자들은 일자리 걱정밖에 안 합니다. 승리는 버락 오바마 편입니다.”

19일 낮(현지시간) 오하이오주 주도 콜럼버스 시내. 택시 운전사 테시지르마이 테스파미카엘은 “지난주 아내·딸과 함께 조기 투표로 오바마를 찍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시민 아만다 사볼도 “자기 집이 너무 많아 몇 채인지도 모르는 매케인이 어떻게 중산층의 고통을 알겠느냐”고 꼬집었다.

이날 저녁 시내의 한 서점. 오바마에 관한 신간 서적을 뒤적이는 기자에게 60대 백인 여성이 “왜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 책은 보지 않느냐”고 말을 붙여왔다. 기자가 “대선은 이미 끝난 거 아니냐”고 답했더니, 그는 정색하며 “선거는 절대 끝나지 않았다”며 “우리는 현재 대선 상황을 아주 불쾌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피하며 사라졌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시내 오하이오 주립대 교정에서 오바마·매케인 지지 대학생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각각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미국의 축소판인 오하이오는 대선의 핵심 승부처다. 백인과 유색인종, 농촌과 도시, 보수와 진보가 뒤얽혀 있다. 통상적으로 북동부 산업벨트에선 민주당, 남서부 농촌에선 공화당이 강세다. 그래서 승부는 늘 박빙이었다. 1960년 존 F 케네디를 제외하곤 오하이오에서 이기지 못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없다.

워낙 치열한 경합주여서 오바마와매케인은 각각 15차례나 이곳을 찾았다. TV 선거 광고는 자금력이 풍부한 오마바 측이 더 활발했다. 길거리에선 “매케인이 부시와 다르다고요? 부시 정책의 95%를 찬성했는데요”란 광고가 연신 흘러나왔다.

21일 낮. 시내에 위치한 민주당 사무실엔 젊은이들과 여성, 흑인들이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공보담당자 톰 레이놀즈는 전화 걸기에 여념이 없는 12명의 자원봉사자를 가리키며 “지금까지 건 오바마 지지 요청 전화가 122만4684통, 유권자 가정방문은 34만846회에 달한다”고 자랑했다.


같은 날 공화당 사무실. 60년대 극좌파 운동가였던 윌리엄 에이어스와 오바마의 친분을 부각시킨 포스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민주당 사무실과 달리 백발의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공화당 지지자로 레스토랑 3곳의 대표인 프랭크 시오톨라는 “오바마가 당선되는 게 두렵다”며 “그가 집권하면 기회의 땅 미국에 정부의 간섭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낮 오하이오 주립대 교정. 알래스카 출신 2학년생 휘트니 밀러(여)는 “페일린보다 오바마가 더 경험이 없다”며 매케인을 옹호했다. 반면 1학년생 매튜 카프러이는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을 조기 투표장에 실어 날랐다”며 오바마의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대표신문인 ‘콜럼버스 디스패치’의 정치부 국장으로 30년 넘게 주 선거판을 취재해온 조 할렛(59)은 “이곳은 늘 초박빙 승부”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4년 대선에선 부시가 전체 88개 카운티 중 72곳에서 이겼지만 2년 뒤 주지사 선거에선 민주당이 72곳을 휩쓸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올 초 민주당 경선에선 힐러리가 83곳을 독식했다”고 말했다. “인종 변수가 작용할 것 같나”라고 묻자, 그는 “누가 알겠나. 그러나 내 감으론 오바마의 지지율이 5%포인트 이상 매케인을 따돌리지 못하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백인 유권자들이 침묵하다가 백인 후보를 찍는다는 ‘브래들리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으로 들렸다.

콜럼버스(오하이오주)=김정욱 특파원



노총 주 사무총장 벌가 “오바마가 경제 살릴 적임자”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가 전쟁 영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그가 필요없다. 이번 선거의 첫째 이슈는 경제다.”

19일 집무실에서 만난 팀 벌가(47·사진) 전미 노총 오하이오 사무총장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만이 현 공화당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왜 오바마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나.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는 크게 늘고, 우리 일자리는 급감했다. 그런데도 매케인은 한·미 FTA 등 자유무역협정에 적극 찬성한다고 선언했다. 반대로 오바마는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누굴 밀어야 하는지는 자명하지 않나. 또 오바마의 세금정책은 중산층·서민층을 위한 것이다.”

- 대선 전망은.

“오바마의 승리를 확신한다. 오하이오는 보수적인 주다. 동성결혼이나 낙태, 총기 소지나 테러리즘 같은 게 주된 이슈가 됐다면 오바마의 승리가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번엔 경제가 최고 이슈라 다행이다. 지금도 오하이오 사람들은 여전히 낙태를 반대하지만, 그보다는 일자리를 더 원한다. ”

- 대선을 1주일여 남겨두고 가장 집중하는 활동은.

“공화당 측은 오바마가 이슬람교도이고 사회주의자며, 심지어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런 주장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회원들에게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견기업 사장 더로 “매케인 작은 정부 공약 공감”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장악할 게 확실시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버락 오바마에게 돌아간다면 미국 전체가 왼쪽으로 갈 것이다. 두렵기 짝이 없다. 매케인이 대선에서라도 이겨야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살아나 미국이 안전해질 수 있다.”

20일 현지 중소기업연합회에서 만난 필립 더로(46·사진)는 오하이오의 토박이 사업가다. 에어 컴프레셔를 생산·판매하는 기업 ‘OPT사’(지점 15개·직원 325명)의 대표다.

그는 자원봉사로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었다.

- 왜 매케인을 지지하는가.

“선거는 선택이다. 나의 가장 중요한 투표 기준은 후보가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보느냐다. 되도록이면 정부 간섭을 줄이고 일반 시민들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게 하는 후보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케인을 지지한다.”

-오바마가 집권하면 기업들이 어려워질까.

“오하이오만 해도 항상 경기 후퇴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공화당 행정부 치하에서 내 기업을 더욱 키웠다. 기회는 항상 있어왔다. 지금 국민의 40%는 세금을 한 푼도 안 내고 있다. 오바마가 집권하면 이 비율이 50%까지 높아진다는 얘기가 있다. 그게 과연 공정한 것인가. 중소기업의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누구나 조그만 사업을 해보겠다는 꿈이 있는데… 그들에게 세금은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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