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책]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오히려 일자리 줄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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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통계청 자료로도 임시.일용직 근로자가 710만명으로 상용근로자(745만명)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상용근로자 중에도 비정규직이 많아,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는 임금근로자의 57%를 비정규직으로 보고 있다. 비정규직이 받는 임금은 정규직의 60% 정도이고, 사회보험 혜택도 4명 중 1명밖에 못받고 있다.

금전적 대우뿐 아니라 같은 직장 안에서 겪는 정신적 차별을 감안하면 차별해소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염원인 건 당연하다. 오죽하면 정규직 근로자들까지 나서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거나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해주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비정규직을 위해주는 듯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장 속에, 비정규직 때문에 임금을 더 올리지 못하는 정규직들이 경쟁자를 줄이려는 저의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

비정규직의 대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올리는 게 비정규직을 줄이는 길이란 걸 정규직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에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이 너무 부담스럽고 또 함부로 고용조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경직적인 정규직 노동시장의 병패는 차별받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날로 늘어나는 청년실업 ("지금있는 사람도 못 줄이는데 어떻게 새 사람을 뽑나?"), 경기가 살아나도 고용이 늘지 않는 '일자리 없는 성장' ("불경기에 내보내지 못하는데 무슨 뱃장으로 고용을 늘리나?"), 국내를 피해 해외에 생산능력을 늘리는 '산업공동화' 등 최근 한국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뒤에는 경직적인 정규직 노동시장이 버티고 있다.

우리의 고용시장은 60개국 평가에서 꽁지를 할 정도로 경직적이고 임금이 높다. 그런데도 만일 비정규직을 정규직 근로자만큼 대우해줘야 하는 식으로 법을 고쳐 노동시장을 더욱 경직시키려 한다면, 기업들은 당장 (지금 내보내기 쉬운) 비정규직 근로자 줄이기에 나설 것이고 청년실업, '일자리없는 성장', 산업공동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려면 정규직이 받는 임금을 깎아 비정규직에 얹어 주든가 정규직의 일자리를 비정규직에게 주겠다는 약속(즉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약속)을 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자는 막가파들도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묘안은 없다. '정규직'고용시장의 유연화 개혁뿐이다.

김정수 중앙일보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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