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FTA 협상 쟁점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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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1998년 논의가 시작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해 말부터 본격 협상에 들어가 벌써 3차 협상을 치렀다. 정부는 2005년 말까지 협상을 끝내고 2006년부터 발효하겠다는 입장이나 재계는 일정이 촉박하다며 늦출 것을 원해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한.일 FTA의 쟁점을 점검해 본다.

◆공산품 관세율 이견=일본은 FTA 협상에서 공산품 관세를 조기에 전면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교역 12위인 한국이 공산품 관세를 철폐하는 것이 FTA 취지에 맞다는 것이다.

일본은 경쟁력 있는 자국 공산품의 수출시장을 넓히기 위해 경쟁력이 약한 섬유산업 등의 관세도 전면 철폐해야 한다는 내용의 FTA 협상 전략을 마련한 상태다.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평균 관세율이 우리(7.9%)보다 크게 낮은 2.3%에 그쳐 관세를 철폐하면 우리가 더 불리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 전자.기계.자동차.부품소재 산업이 일본보다 경쟁력이 떨어져 시장 개방에 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금융시장을 포함해 서비스 시장도 열거된 것 이외는 모두 개방하자고 요구한다. 정부는 새 상품이 쏟아지는 금융시장 등을 별다른 대비 없이 개방했다가 예측하지 못한 사태를 맞을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은 "자동차를 포함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 점진적으로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론 무역적자 확대=일본은 우리의 최대 수입국이다. 지난해 일본으로부터 363억달러어치를 수입했다. 수출은 173억달러에 그쳐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190억달러에 달했다. 일본과 FTA를 맺으면 일본 제품이 국내에 쏟아질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FTA가 맺어지면 단기적으로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한 해 최대 61억달러나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던 것을 일본에서 싼 값에 들여와 수출하는 것을 고려하면 전체 무역수지는 15억달러 정도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10년 뒤 일본과의 경쟁으로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면 대일 무역적자가 4억달러 가량 증가하며, 전체 무역수지는 30억달러 개선될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는 한.일 FTA로 인해 한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단기적으로 39억달러, 장기적으로 2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기업의 일본 의존 심각=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한.일 FTA 일정을 늦추고, FTA가 맺어지더라도 전자 등 경쟁력이 약한 산업의 관세는 점진적으로 철폐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떨어지는 만큼 FTA로 인한 이해 득실을 분명히 따진 뒤 FTA를 맺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는 한.일 FTA를 하루빨리 체결해야 한다던 기존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전경련은 국내 기업에 대한 실태 조사 결과 우리의 수출 주력상품인 휴대전화 배터리의 부품이나 고급 안경테 등 예상하지 않았던 품목에서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TA를 경쟁력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양국이 FTA를 서두르는 것은 경제의 장기 성장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을 교두보로 삼아 아시아 시장에서의 우위를 유지하려고 하고, 한국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일본의 기술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규모가 한국의 여덟 배를 넘고 기술 격차가 커 성급히 시장을 열었다간 국내 산업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정부와 재계가 점진적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것도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인교 인하대 (무역학)교수는 "한.일 FTA가 성공하기 위해선 관세 철폐뿐 아니라 기술 제휴와 자본 이전 등 양국 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일본 기업이 투자하기 좋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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