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금융위기 내내 ‘직불금 네 탓’만 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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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지수 1000이 무너진 24일에도 정치권은 한가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10·29 재·보선 현장인 울주를 찾았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주장하는 장외집회 현장을 찾았다.

국회 본청의 기자회견장에선 “직불금은 네 탓” “언론 장악 음모를 밝힐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주장만 이어졌다.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는 짧았다. 질타는 있었으나 위기 극복의 주역이 되어야 할 자신들이 머리를 맞대 위기를 극복하려는 고민은 좀체 느껴지지 않았다.

2008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매사를 정쟁(政爭)화하고, 정쟁을 통해서 소통하고 있다. 근래 쌀 직불금 파문으로 날 새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직불금은 일종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직불금 문제가 경제위기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닌데…”란 말은 좀처럼 정치권에서 듣기 어렵다.

농민이 아닌 사람에게 직불금으로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돈이 흘러간 건 분명 잘못이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하는 건 의당 정치권이 할 일이다. 정치권은 그러나 이를 정쟁화했다. 상대 공격의 소재로 삼았다. 한나라당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공직기강을 세울 기회로 여겼다. 야당은 야당대로 현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를 파헤치는 과제가 될 것이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국정조사를 하게 되면 경제위기 돌파의 주체가 되어야 할 정부 부처의 업무가 두 달여 동안 마비된다는 걸 알았지만 응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잘못이란 인식과 정치적 기대 때문이다.

정치권이 이렇게 갈리자 국민은 불화했다. ‘가진 자’ ‘못 가진 자’로 나뉘어 손가락질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선 국민적 역량을 총 결집해야 하는데 더 어렵게 만든 것이다. 정치 리더십이 입으론 위기를 말하지만 실제론 절실히 못 느끼고 있다는 사례다.

정치권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점도 상황을 더 꼬이게 한다. 청와대도 예외는 아니다. 공기업을 개혁한다면서 그간 내놓은 정책은 개혁 후퇴로 받아들여질 만한 내용이었다. 선제적인 대책이라며 내놓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혹했고, 또 다른 선제적 조치가 뒤따르기 일쑤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는 “ 시장이 따를 수 있는 권위와 정보력으로 경제 주체들을 끌고 나가야 하는데 이젠 뭐라고 해도 믿지 않는다”며 “시장이나 전문가에 대한 지적 리더십을 잃었다”고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게다가 시장의 경제라인 교체 요구를 외면해 오고 있다. “시장의 합리적 요구조차 수용하지 않는다”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촛불시위 때만 해도 사실 ‘반이명박 세력’이 주축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 상황에선 ‘이명박을 찍었던 사람들’의 불만이 더 고조되고 있다. 정권엔 절체절명의 위기다.

여야도 믿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나라당은 172석 거대 여당다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해왔다. 친이계는 친이계대로 분열돼 있고,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은 뒷짐지고 있다. 정국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을 리 만무다. 정책적으론 나약했다. 종합부동산세 등 감세나 공기업 개혁은 한나라당이 지난 10년간 목놓아 부르던 노래였다. 하지만 근래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정부안조차 탈색시키곤 했다.

야당은 근래 세 번째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쇠고기 국조-직불금 국조에 이은 ‘언론 장악 음모’ 국조다. 이제껏 국조는 정쟁의 장이 되곤 했다. 의혹만을 부풀려왔다. 야당은 “이명박 정부를 흔들 수 있다”는 일에 목을 매는 듯하고 있다. 결정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시종 무력했다. ‘민주당’이란 단어가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지 모르는 것은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다.

정치 리더십이 이렇다 보니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한반도 리스크’의 또 다른 변수인 대북 문제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이 현재진행형인데 과연 관리할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컨설팅 박성민 대표는 “정치권이 노무현 대 이명박이란 대선 프레임에서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나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서 볼 수 있듯이 위기의 관리는 관료들이 하지만 위기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는 건 결국 정치 지도자들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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