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리포트>빚에 쪼들린 市,토지.주식 매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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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7일은 동.서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7주년이되는 날이다.
그러나 당시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분단의 벽을 부수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던 동.서베를린 시민들은 그날의 감동을 이제 잊어버린지 오래다.
연방의회와 정부가 2000년까지 이전하기로 했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각종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베를린이 직면하고 있는 난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가운데서도 베를린시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심각한 재정압박이다.동.서베를린이 통합된 이후 늘어나기만 한 시의 재정적자는 이제 5백억마르크(약 25조원)를 돌파했다.통일독일의 미래 수도라는 장미빛 꿈만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너 무 급박해진것이다. 결국 베를린시는 지난달 24일 긴급재정적자 삭감안을 마련했다.
내년에 73억마르크의 예산을 절감하기로 하고 57억마르크에 달하는 정부 소유 토지와 주식의 매각을 결정했다.
이를위해 베를린시는 구청 수를 99년까지 23개에서 12개로대폭 줄이고 2001년까지는 시정부및 산하단체 직원 2만4천3백명을 대거 감원한다는 원칙도 세웠다.시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각종 건물의 보수공사 착공은 연기되고 문화.교육 부문 예산도 내년에 1억마르크나 삭감된다.
독일 연방과 주정부가 유럽단일통화에 참가하기 위해 재정적자규모를 축소하는데 동참하는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베를린시가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분단시절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방문했고 장벽붕괴 직후 헬무트 콜 당시 서독총리가 연설했던 옛 서베를린 쇠네베르크 시청사건물에도 이러한 어둠의 그림자는 짙게 배 있다.
당국은 비용절약을 위해 밤이면 청사를 밝혔던 전등을 끄게 했고 건물의 빈공간은 연회장으로 민간인들에게 유료로 대여하고 있다.재정적자가 심해짐에 따라 동.서 베를린 주민들의 골도 다시깊어지고 있다.
동베를린 시민들은 서쪽 주민들과 거의 대등할 정도의 수입을 갖고 있지만 상대적인 심리적 열등감은 더해가고 있다.자유를 부르짖던 동베를린인들은 독재시절의 구속은 잊어버리고 이제 평등을외치고 있다.이들은 지난해 시의회 의원선거에서 옛동독공산당 후신인 민사당에 대거 표를 몰아주었다.
어두운 경제사정이나 심리적 갈등들이 언제나 해결될 수 있을지현재로선 사실 예측이 어렵다.
베를린시민들은 수도이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행여 사정이 나아질까 기대를 걸어보고 있는 실정이다.
베를린=한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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