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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9일 개봉 론크레인감독 "리처드3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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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셰익스피어는 영미감독들에게 늘 도전의 대상이다.다소 지루하고무겁게 느껴지는 고전 시대극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해내는가에따라 감독의 예술적 깊이와 역량이 평가받기 때문이다.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영화화된 다.
9일 개봉되는 『리처드 3세』도 셰익스피어 원작의 영화다.그러나 영국의 신예감독 리처드 론크레인은 역대 셰익스피어영화와는전혀 다른 「해석」을 시도했다.15세기 영국왕실에서 일어난 음모와 술수의 무대를 20세기로 바꿔놓은 것이다.
전쟁터엔 칼과 말 대신 기관총과 지프.탱크가 누비고 왕의 대관식은 히틀러의 나치집회로 묘사된다.
무자비한 야망으로 권좌에 올랐다 비참한 종말을 맞은 리처드 3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싹트던1930년대에 빗댄 론크레인감독에게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은곰상(감독상)을 수여했다.
리처드 3세는 장미전쟁에서 랭커스터가를 물리쳐 잉글랜드를 지배하게 된 요크가의 마지막 왕.단 2개월간 왕위에 머무른 그는셰익스피어 작품속에서 가장 악마적으로 묘사된 주인공이기도 하다. 맏형인 에드워드 4세의 서거후 12세,9세인 조카의 섭정자가 된 리처드(그는 섭정자가 되기 위해 둘째형도 살해했다)는 조카들마저 암살하고 왕이 된다.
그러나 그의 왕위는 숙청에 숙청을 거듭하는 공포정치로 간신히유지되고 결국 반대파와의 전쟁터에서 종말을 맞는다.론크레인감독은 관객들이 이런 리처드 3세의 면모에서 현대의 독재자들을 떠올리도록 의도하고 있다.
영화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리처드 3세의 삐뚤어진 욕망에 초점을 맞춰 전개된다.
자신을 낳은 어머니마저 그를 저주할 정도로 그는 못생긴 얼굴과 말라비틀어진 왼팔,곱사등을 지닌 불구자다.그러나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과 외모콤플렉스는 그를 뛰어난 언변과 권모술수로 무장한 야심가로 키웠다.영화를 보고 있으면 늘 왕실 이 권력다툼의 장으로 묘사되는 우리나라의 사극을 보는듯한 느낌이다.리처드3세역을 맡은 이언 매컬린의 연기는 출중해 마치 칠삭둥이 한명회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탤런트 정진을 연상시킨다.
파시즘에 대한 블랙유머로 읽히는 『리처드 3세』는 사실 매컬린의 뛰어난 연기로 재미를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사이코적인 광기와 일말의 양심을 떨치지 못해 괴로워하는「악인」의 이중적 이미지를 실감나게 연기해냈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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