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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은행빚으로 고생하자 老母 목숨끊어 단칸방 전세금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아들.딸이 빚진 것을 당신의 잘못처럼 고민하셨던 것같습니다.』 누나의 은행빚 보증을 섰던 남동생이 월급을 차압당하게 되자 남매를 안쓰러워 하던 칠순 노모가 자신이 살던 단칸방의 전세금을 빼 빚을 갚으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일 오전 서울동작구신대방동 보라매병원 영안실.
어머니 송국보(宋國甫.70.서울관악구신림5동)씨의 빈소를 지키는 둘째아들 김상덕(金相德.35.공무원)씨등 자식들은 넋이 나가있었다.
金씨가 어머니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은 것은 이날 오전3시쯤.
어머니가 전화로 『나 죽어야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설마 자식들의 빚을 해결해주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의미인지는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金씨가 새벽길을 달려갔을때 宋씨는 이미 목매 숨진 뒤였고 방바닥에는 「전세금 2천2백만원을 빼 딸의 은행빚을 갚아라」는 서툰 글씨의 유서가 놓여있었다. 2남3녀를 둔 宋씨는 2년전 남편과 사별한 뒤 『자식들에게 신세지기 싫다』며 연립주택 반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아왔다. 가족들은 94년 택시영업을 하는 셋째사위(44)가 개인택시 구입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받은 3천만원을 갚지 못해 딸(41)이 주유소 주유원으로 나서고 보증을 섰던 상덕씨의 월급마저차압당할 지경에 이른 것을 宋씨가 심하게 고민해왔다 고 말했다. 평소 자식들에게 부담주기를 극도로 싫어한 宋씨는 「장롱안 치마 속에 2백50만원이 든 은행통장이 있으니 장례비로 쓰라」며 「이렇게 죽어 아들.며느리에게 미안하다.제사는 신경쓸 것 없다」고 유서에 남겼다.
나현철.이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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