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뒤늦게 억지 자구노력 부산한 은행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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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지원을 받는 은행들에 대해 고강도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21일 은행의 해외차입에 대한 지급보증을 승인하면서 “은행이 고임금 구조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국민 지원을 받은 만큼 은행의 자구적 대응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원에 상응하는 자구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다급해진 은행들은 임원들의 보수를 삭감하거나 반납하고 직원 월급을 동결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2일엔 은행연합회에서 시중은행장 회의를 열고 금융위기 극복에 적극 나서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시중은행에 억지 춘향 식의 자구노력을 강요하는 것이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국내 은행들이 보인 방만한 경영행태와 도덕적 해이 문제는 차제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또 정부 지원을 받는 은행들은 정부의 요구가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자구노력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비화된 외화유동성 부족은 국내은행들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사태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해외발 금융위기와 관계없는 원화유동성 부족 사태는 은행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은행들은 경기가 좋을 때 위험관리는 아랑곳없이 다투어 외형을 늘려 재미를 보고, 그런 실적을 빌미로 임직원의 월급만 다락같이 올렸다. 그러다가 막상 상황이 어려워지자 자구노력은 없이 정부에 손부터 내미는 후진적 경영행태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외환위기 때 그토록 호되게 당하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국민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정부의 지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고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은행권은 진정한 자성과 함께 후진적인 경영행태를 일신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