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좋은 영화 음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올해 서거 50주기를 맞는 러시아 감독 지가 베르토프(1896~1954)의 걸작 영화'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년)가 모스크바에서 처음 상영될 때 생음악이 빠르고 긴박한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20년대 말 당시 모스크바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 영화다. 무성영화 시절의 얘기다.

그 후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피에르 앙리를 비롯, 나이즐 험버스톤.콘스탄틴 리스토프.칼렙 샘슨이 각각 이 영화를 위해 배경음악을 작곡했다. 속도감 이 작품을 상영할 때마다 기계 소음이 섞인 음악에서부터 최근엔 테크노풍의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피아노'의 작곡자 마이클 나이먼(60)이 자신이 이끄는 밴드와 함께 첫 내한공연을 한다. 오는 6월 8~9일 LG아트센터에서 자신이 직접 음악을 붙인 영화'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상영하면서 동시에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는 것. 2002년 5월 런던 로열페스티벌홀 초연 이후 세계 순회공연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이에 앞서 영화음악'피아노'에서는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다. 또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프로스페로의 서재'의 사운드트랙을 들려준다.

"최고의 영화음악이란 음악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영화의 줄거리에 맞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물론 듣기에도 편해야 한다. 나는 굵은 글씨를 휘갈기는 것보다 '음악 벽지(壁紙)'를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영화음악 사운드트랙 앨범을 단 한 장도 구입한 적이 없으면서도 영화음악 '피아노'(제인 캠피언 감독.92년)로 200만장의 판매액을 올린 그의 영화음악관을 잘 요약해 놓은 말이다.

그는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대중가수 못지않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직도 클래식 음악의 주류에서도 이단아 취급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 'Facing Goya'(2000년) 등 다섯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영화음악 못지않게 연주회용 클래식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피아노' 의 사운드트랙을 콘서트용으로 개작해'피아노 협주곡'으로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필립 글라스.스티브 라이히 등의 작품 경향을 가리키는'미니멀리즘'이라는 말도 그가 68년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던 중 만들어낸 말이다.

그는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고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으로 패션쇼.컴퓨터 게임을 위한 음악도 만들었다.

영국 국립극단의 음악감독 해리슨 버트위슬의 권유로 베네치아 곤돌라 뱃사공의 노래 편곡을 맡으면서 만든 앙상블이 그가 이끄는 '마이클 나이먼 밴드'의 효시다. 기존의 음악을 해체해 전혀 현대적 감각을 살린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현악 4중주와 색소폰 3중주, 베이스 트롬본, 베이스 기타, 피아노, 트럼펫 등으로 구성된 실내 앙상블이다.

피터 그린어웨이(62)감독의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82년)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84'의 2악장을 재구성한 것. 특유의 강렬한 선율과 리듬으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나이먼은 런던 북쪽에 있는 자택과 프랑스 피레네 산맥에 있는 18세기식 농가를 오가며 작곡에 몰두하면서 틈틈이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세계 순회공연에 나선다. 현재 숀팬 주연, 닐스 뮬러 감독의 '리처드 닉슨 암살사건'의 영화음악을 맡아 작곡에 열중하고 있다. 02-2005-0114.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 마이클 나이먼

▶1944년 런던 출생
▶61~65년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작곡.음악학 공부
▶65~76년 작곡 활동 접고 음악평론가로 활동
▶74년 '실험음악: 존 케이지와 그 이후' 출간
▶76년 피터 그린어웨이 감독 만나 영화음악 작곡가로 변신
▶77년 민속악기.드럼.색소폰.현악기로 마이클 나이먼 밴드 결성
▶86년 오페라'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사나이'발표
▶93년 제인 캠피언 감독의 '피아노'영화음악 작곡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