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혔던 부동산 시장, 투기지역 해제로 ‘대출’ 풀어준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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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규제를 풀기로 한 것은 그만큼 부동산 시장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재영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은 “급격한 집값 하락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실상 규제 완화 효과를 내는 묘수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경기가 워낙 안 좋아 대출 규제 완화가 수요 확대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당장 효과는 없고, 잠재적으로 금융 불안 요인만 키우는 악수를 뒀다는 비판도 있다.

10·21 부동산 대책에 따라 건설업계에 9조원이 투입되고 수도권 주택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는 대폭 해제된다. 부동산 업계는 수도권 신규 분양단지의 청약 경쟁률이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은 판교 신도시 건설 현장. [조문규 기자]

◆담보대출 증가=당장 은행이 주택 담보대출 때문에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주택 담보대출 연체율은 8월 말 현재 0.5% 수준이다. 집값이 한창 오르던 2005년, 2006년보다 낮다. 2006년부터 대출을 확 조였기 때문이다. 전체 대출액이 집값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48% 수준으로 미국(80~90%)보다 훨씬 낮다. 거품 붕괴로 곤욕을 치른 10년 전 일본(120%)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은행권 주택 담보대출 규모는 2004년 169조원에서 232조원으로 불어났다. 보험사나 저축은행에서 빌린 돈까지 합치면 규모는 더 커진다. 최근에는 금리까지 오르면서 대출 부담이 더 커졌다. 이달 초 고정금리형 주택 담보대출의 최고 금리는 연 10%를 넘어섰다. 1년 전 월 65만원씩 이자를 내던 사람(1억원 대출)의 경우 지금은 이자가 83만원으로 늘었다. 변동금리형 대출 금리도 8%를 웃돌고 있다.

◆부작용 관리해야=대출 규제 완화는 건설사들의 대표적인 요구사항이었다. 자금 동원 여력을 늘려주면 조금이나마 수요가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건국대 조주현 도시연구원장은 “수요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소득에 따라 대출을 제한하는 총부채 상환비율(DTI)은 소득 증명이 잘 안 돼 실제 효과는 작고, 부담만 된 측면이 있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는 “투기 억제를 위해 과도하게 억제한 면이 있다”며 “금리도 높고, 집값도 하락 추세이기 때문에 규제를 푼다고 투기가 일어나거나 대출이 급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의도와 달리 상황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대출 규제가 풀려 여윳돈이 생기면 전세를 끼고 바로 살 수 있는 기존 주택에 관심이 몰릴 것”이라며 “당장 입주하기 어려운 미분양 주택의 처리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걱정은 실물 안정 대책이 거꾸로 금융 불안을 부추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송준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금융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이제 와서 부동산 활성화 수단으로 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지금은 당장 필요한 건설업체 운영자금 지원에 집중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영훈 기자 ,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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