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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초등생 자녀 가정학습 위해 ‘열공’ 하는 엄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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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를 공부하는 엄마모임인 ‘보물찾기’ 회원들이 15일 대전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에서 지리를 쉽게 배울 수 있는 지도 게임을 만들고 있다. [대전=오상민 기자]

고은정(37·경기도 부천시)씨는 아들 태완(부천서초 3)군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교과서를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다는데 교과서에 온통 그림뿐이었어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막막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새 교과서를 받아 오면 자세히 보는 부모가 드물다. 행여 아이가 공부를 하다 모르겠다고 하면 교과서를 같이 읽는 대신 참고서나 문제집을 보라고 한다. 그것도 안 되면 학원으로 내몬다. 부모가 교과서를 잘 몰라서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엄마들이 나섰다. “교과서에 모든 답이 있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1년 넘게 사회 교과서만 공부한 모임도 있다. 교과서를 배운 후 사교육을 그만뒀다는 엄마도 적지 않다. 이들은 “엄마가 교과서를 알아야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며 “교과서만 ‘열공’해도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엄마표 사회 교과서’ 3권 완성 15일 오전 11시 대전 관저동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 ‘보물찾기’ 회원 10명이 색색의 종이를 잘라 카드를 만들고 있다. 카드에는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사진이 붙어 있다. 김자인(38)씨는 “아이들이 지리를 어려워해 놀이로 배울 수 있는 지도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물찾기 엄마들이 자녀의 교과서를 연구한 지는 1년쯤 된다. 매주 수요일 모여 사회 교과서를 ‘열공’하고 있다. 김씨는 “사회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 놀면서 배우는 재밌는 과목”이라며 “우리 생활과 가장 가까운 게 사회 과목이라는 생각에 사회 교과서부터 펼쳐 들었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헌책방을 돌며 교과서를 구입했다. 3~6학년 사회 교과서를 크게 공간·사회·시간으로 구분해 3권으로 만들었다. 서인희(35)씨는 “사회 교과서를 보니 학년별로 공간·사회·시간 부분이 심화학습 형태로 구성돼 있었다”며 “도움이 필요할 땐 교육청 사이버 가정학습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았다”고 말했다.

9월에는 ‘옛날과 오늘날의 비교’ 단원을 공부한 후 아이들을 데리고 온양민속박물관에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교과서에서 읽은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보여 주기 위해서다. 답사에 필요한 워크지는 엄마들이 직접 만들었다.

한혜령(37)씨는 “교과서를 공부하다 보니 아이가 지금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앞으로 배울 내용이 뭔지 알게 됐다”며 “아이의 학습을 어떻게 도울지 방향을 잡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정(37)씨는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엄마들이 모였다는 얘기를 듣곤 남편이 신문과 인터넷에서 직접 자료를 찾아 준다”는 게 이 씨의 자랑이다.

‘보물찾기’ 회원들은 사회 교과서 공부를 마친 후 다른 과목 공부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학습 목표’ 따라 공부하기 16일 오전 11시 부천시 중동 소나무푸른도서관 디지털자료실에서는 10명의 엄마가 국어 교과서를 ‘열공’하고 있었다. 『기적의 품앗이 학습법』의 저자 홍도미(48)씨의 강의를 듣던 엄마들은 노트에 여백이 없을 정도로 빼곡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홍씨는 이날 “교과서를 맨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쓰기』 첫째 마당을 보면 그림이 먼저 나오는데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는 지적이다. “그림은 한 단원의 주제를 담은 것으로 자녀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라”고 홍씨는 조언했다.

조수경(38)씨는 “교과서를 배운 후 ‘쉼터’나 ‘되돌아보기’는 복습 부분으로 엄마가 꼭 도와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아이가 ‘학습 목표’에 완벽히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가끔 아이들은 어떤 주제를 주고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애를 먹는다. 홍씨는 “『쓰기』 교과서를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교과서에는 어떤 주제에 대해 예시문을 보여 주고, ‘빈칸 채우기’로 문장을 완성하는 연습을 한다. 그 다음 짧은 글을 지은 후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가도록 한다. 예컨대 가을 나들이를 주제로 글을 쓰면 먼저 사진이나 나들이에서 있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린 후 이를 요약하는 짧은 글을 쓰고, 이를 바탕으로 긴 글을 쓰게 하라는 것이다.

나현묘(43)씨는 “지금껏 동화책은 읽어 주면서 교과서를 함께 읽어 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교과서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왜 어렵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과서가 이끄는 대로 활동하기 가톨릭대 평생교육원 ‘우리아이 교과서 학습 지도하기’ 강좌에는 기수마다 10~20명의 엄마가 참여해 교과서를 공부하고 있다. CBS문화센터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수학 지도법’과 ‘수학 교과서 풀이’를 운영 중이다.

7차 교육 과정의 특징은 학습자 중심이다. 학생들이 직접 해야 하는 활동이 많다. 글자라곤 ‘~을 해 보자’는 제안 정도이고 그림이 많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만,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는 게 엄마들의 고민이다.

엄마들이 초등학교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은 자녀를 1등으로 만들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다. 엄마가 알아야 자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교과서를 공부하는 엄마들의 결론은 간단하다. “교과서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학습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교과서에서 ‘~해 보자’고 하면 아이와 함께 실제로 해 보라는 얘기다. 조수경씨는 “그동안 교과서에 뭐가 나오는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며 “교과서만 잘 봐도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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