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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를세우자>5.무형문화재 전승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제18호 동래야유(東萊野遊),제39호 처용무(處容舞)등은 앞으로 10여년이 흐르면 박물관에서 도구를 빌려 공연해야 할지 모른다.핵심 장비인 사자,그리고 탈을 제작할 줄 아는 인간문화재들이 모두 80 세 이상인데다 후보자나 조교를 두지 못한 때문이다.서낭신에게 풍요를 비는마을축제인 제98호 경기도 도당굿은 이미 지난해 맥이 끊겼다.
무녀의 굿에 맞춰 노래사설을 불러줄 악사가 사망한 탓이다.
전통문화의 「인프라」,무형문화재 맥이 끊어져간다.
미흡한 정부의 지원속에 대를 잇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는데다연습하고 발표할 공간마저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지난 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64년부터 지정되기 시작해 현재 99개 종목 1백77명의 보유자와51개의 보유단체가 인정돼 있다.이들 보유자 1세대는 해마다 10여명(94년 10명,95.96년 각 11명) 이 타계하고 있다.평균연령이 70세에 이르기 때문이다.

<표 참조> 현재까지 예능분야 18명,공예기술 16명등 모두22개 종목 사망자 34명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이중 상당수는 후보조차 없다.
제10호 나전장(螺鈿匠)은 94년 이후 4명의 보유자중 3명이 타계했으며 특히 칠분야는 후계자가 없어 대가 끊겼다.
제79호 발탈도 마찬가지(올해 지정된 박해일옹은 「발탈」이 아닌 「재담」기능보유자다).화장(靴匠).벼루장.시나위등은 이미종목 자체가 취소됐다.
보유자가 생존해 있어도 대를 이을 제자가 없는 경우 역시 명맥유지가 위험하다.제60호 장도장의 낙죽장도(烙竹粧刀),제93호 전통장(箭筒匠)이 그렇다.
이같은 무형문화재의 위기는 한달에 보유자 65만원,보유단체 36만원,후보자 32만원,조교및 전수교육보조자 20만원,전수장학생 10만원인 국가지원금으로는 생계유지가 안된다는데서 온다.
제1호 종묘제례악및 제39호 처용무 기능보유자인 김천흥(87)옹은 이와 관련,『일단 5년여의 교육을 마쳐 이수자가 되고 나면 전수장학금도 중단되고 계속적인 연마를 위한 아무런 장치가없다』면서 『후배들을 키우고 싶어도 생계보장이 안돼 선뜻 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공예분야는 많은 경우 사회적 수요까지 줄어들어 더욱 설 곳이없다.이에 관한 정부,특히 문화체육부의 미온적 인식은 산하단체의 정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제47호 궁시장(弓矢匠)의 화살분야 보유자후보 김종국(金鍾國.56)씨는 『양궁협회도 아닌 대한궁도협회의 공식대회에서 그라파이트로 만든 활,카본섬유로 만든 화살이 공인용구로 쓰인다』고지적하고 『신소재로 만든 화살이 비거리도 길고 값도 싼데 재래식 화살을 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사라져가는 명인들의 기예를 후대에 전할 기록작업도 미흡하다.
정부가 65년 이래 제작한 기록영화는 음악분야(녹음대상)를 제외한 1백1건의 기.예능중 70건에 불과하다.
벼루장 이창호(90년 타계),줄타기 김영철(88년),궁시장 조명제(80년),경기도 도당굿 조한춘(95년)의 기예는 영상으로 담길 기회조차 놓친채 사라져버렸다.
무엇보다 인간문화재 기.예능의 몸짓과 기술,제조비법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는 사업은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무형문화재의 또 하나 문제는 상설연습장및 발표장이 없다는 점이다. 전국에 28곳의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이 있으나 발표장이아닌 연습.교육공간으로도 99개 종목을 소화하기에 태부족인 상태다. 특히 서울의 경우 33개 종목중 6개 단체만이 대치동 가건물에 92년부터 5년째 세들어 있으면서 하나뿐인 강당을 연습장으로 돌려 쓰는 실정이다.
문체부는 97년 삼성동 종합무형문화재전수회관을 완공할 계획이라고 말하지만 예산부족으로 5년을 끌어온 공사가 내년중 마무리될지도 미지수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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