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딸아이를 때린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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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빠,가짜로 우는 거지?』 아빠가 운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듯 딸아이는 자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어떻게 보면 심각하기도,우스꽝스럽기도 한 광경이었다.
나는 오늘 다섯살난 딸아이를 처음으로 때렸다.우리가 퇴근하고돌아오자 아이는 나가서 놀자며 고집을 꺾지 않고 떼를 썼다.깜깜한 밤이니 못나간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화가 난 나는 그만손바닥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고 말았다.
여기에는 최근들어 잘 나가던 놀이방도 가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아이에 대한 불쾌한 마음도 있었다.그래놓고는 마음 아프고 속상해 울어버린 것이다.
훌륭한 가정교육은 「엄부자모(嚴父慈母)」에서 비롯된다고 했던가.딸아이를 때리고 난 후 흘린 나의 눈물엔 여러 이유가 섞여있다.우리는 부부교사로 늙으신 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다닌다.
당연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그러니 아이가 아빠.엄마와 함께 놀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애를 놀이방에 보내는 것만해도 마음 아픈데 때리기까지 하다니.
그에 대한 미안함이 눈물의 첫째 이유였다.
두번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어렸을 적 아버지는 엄하고 냉정하셨다.초등학교 교사를 하셨지만 후에는 병으로 지내시면서 생선행상을 하시는 어머니에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울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어쩌면 아버 지는 그같은처지 때문에 더욱 엄하게 가정교육을 시키셨는지도 모르겠다.나이가 들면서 새로워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울게 만든 것이다. 세번째는 기다려줘야 할 아빠가,그것도 교육자인 내가 순간적으로 아이를 때렸다는 것이 부끄러워서였다.혹자는 무슨 궁상이냐고 할지 모른다.하지만 눈물은 흘리고 싶다고 나오는 것이아니지 않는가.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선친에 대한 그리움 ,교사로서의 부끄러움이 한데 맞물려 떨어지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눈물을 그치고 딸아이를 가만히 안았을때 딸아인 아무렇지도 않은듯 물었다.
『아빠,아까 진짜로 운거야?』 이만기<인천시만수6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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