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언론 있어 건강한 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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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미국의 지상파 방송들은 한바탕씩 전쟁을 치른다. NBC '언론과의 만남'프로그램에서는 날카로운 인터뷰로 정평이 있는 팀 러서트가 행정부와 의회의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신랄한 질문공세를 편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은 여러번 불려 나왔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출연했었다.

비슷한 시간대에 진행되는 ABC나 CBS 방송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도 각계 주요 인사들이 격론을 벌인다.

9일 아침 이 프로그램들은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 때문에 각별히 뜨거웠다. NBC 방송의 '매클렐런 그룹'토론 진행자인 존 매클렐런은 "미국의 실추된 이미지를 되살릴 유일한 방법은 올 11월에 정권을 바꾸는 것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은 아직 전쟁 중이다. 이라크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군이 죽어가고, 아프가니스탄에선 빈 라덴 추격전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 중에는 자기 병사들이 저지른 과오와 실책을 공개하거나 대놓고 공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인지상정은 어떤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방송을 비롯, 신문.잡지 등 미국의 각종 언론은 집요하게 이라크 주둔 미군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끈질기고 거침이 없다. '그런 걸 왜 들춰내느냐'는 비난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의회는 곧바로 청문회를 열어 오만하다는 평을 들어오던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질책했다.

올 대선에 나설 민주.공화 양당의 후보는 나름대로 약한 구석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네오콘(강경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조정받는 허수아비고,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은 무책임한 급진 자유주의자라고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누가 당선되든 국민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언론의 비판 기능이 존중받고,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제 목소리를 내는 한 아무리 휘청거려도 미국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포로 학대사건은 미국이 아직 얼마나 건강한 사회인가를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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