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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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병자(丙子)일에 태어난 남자는 미처(美妻)를 얻게 된다.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책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맥은 병자일 생이다.
『미인에게 장가든단다.』 책을 훑어보던 을희가 농담처럼 말했다. 『미처요? 「미국인 아내」라는 뜻은 아닐까요?』 맥 역시농담처럼 받아넘겼다.그는 미국 유학을 앞두고 준비중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미국으로 가 공부하던 어느날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정말 미처에게 장가 가도 될까요?』 큰아들은 켄트교수의 딸을 사랑하고 있었다.이런 전화를 할 땐 이미 「결혼」을결심한 것이려니 짚였다.그쪽 시간은 아침이다.분주한 아침시간을애써 쪼개며 농담할 처지도 못된다.
『서두르지 말고 졸업한 다음에 결혼해라.「미처(美妻)」든 「한처(韓妻)」든 그것이 남자로서의 도리다.알겠지?』 점잖게 타일렀지만 내심 불안했다.
켄트교수의 딸은 드물게 헌신적인 아가씨다.게다가 슬기롭고 명랑하다.그만한 처녀는 미국만 아니라 한국에도 별로 없을 것이다.그러나….큰아들을 미국여성과 결혼시켜 「반(半)한국인」으로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또 켄트교수는 어떻게 생각할지.모르긴 하나 그도 선뜻 찬성하진 않을 것만 같았다. 을희의 짐작대로 켄트교수는 그들의 결혼에 반대했다.그리고 끝내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제결혼이 말같이 쉽지 않으리라는 우려,가문을 이어야 할 맏아들의 아이들을 혼혈아로 만드는데 대한 망설임….그런 의식의 바닥에 흐르는 것은 을희를 향한 뜨거운 애집(愛執)이었을지도 모른다.한 부녀(父女)가 어찌 한 모자(母子)의 사랑을 함께 나눠 가질 수 있으랴.한국적인 그의 모럴이 딸의 사랑까지 막아서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켄트교수의 딸은 도망이라도 치듯 미국남자와 결혼했고,맥도 그후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한국처녀와 후딱 결혼했다.그녀는 「미처」는 못되었다.「미국인 아내」도 아니었지만 「미인 아내」도 아니었다. 『평범하다는 건 미덕(美德)입니다.결국은 「미처」인 셈이네요.』 맥은 그럴싸하게 자기 합리화를 꾀하며 웃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는 평범하지도 않았다.아버지는 내로라 하는 대기업가,어머니는 손꼽히는 명문 집안의 딸.외적 여건이 그녀의 「평범」이라는 「미덕」을 칙칙한 도금(鍍金)으로 칠해 놓고 있 었다. 아들 하나는 일찌감치 낳았으나 그들의 부부생활도 살뜰한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지나가는 말로 아들이 물었다.
글=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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