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포로 학대 파문을 빨리 수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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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미군의 이라크 포로에 대한 비인도적 만행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면서 세상을 충격에 몰아넣은 지도 벌써 12일이 지났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도 이 사건은 일부 군인과 이들에 대한 잘못된 통제 때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 사건이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훼손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 내 대다수 여론도 미국 군인이 저지른 만행을 부끄러워하며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지휘계통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하급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 하나 책임을 졌거나,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미국 정부의 이런 오만한 자세는 세계에 또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사담 후세인도 아니고, 나치도 아니며, 일본 제국주의도 아닌 명예와 인권을 강조해온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군인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행동을 '전쟁터의 현장에서 벌어진 일부 이탈된 군인들의 탈선이었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사태가 만천하에 드러난 후에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미국 지도부의 오만함과 뻔뻔스러움에 세계는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서 이라크에 파병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이 세계 여론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우리는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를 표시함으로써 비난의 수렁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유일한 강대국으로서 군사력 못지않게 도덕적인 우위도 확보해 힘 때문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지지를 받는 나라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과거의 미국은 어느 정도 이러한 조건에 부합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건 조사를 미국이 아닌 유엔 인권위와 국제기구에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은 책임지게 해야 한다. 혼자의 힘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유엔과 국제사회와 전후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엔도 테러리즘에 대한 대처는 미국만이 아닌 인류 공동의 당면과제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미국이 이렇게 변해야만 미국의 정책을 지지해 이라크에 파병한 동맹국들의 곤혹스러움과 어려움도 해소시켜 줄 수 있다. 미국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