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비판의 생명력은 균형성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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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민주주의는 건전한 비판을 전제로 발전한다.따라서 정치인.정치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강진단일 수 있다.중앙일보 10월21일자 손호철(孫浩哲)교수의 글 「신종 전염병-승리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대단히 값진 내용 이고 함축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그러나 몇가지 대목은 孫교수가 다소 오해하거나 균형성을 잃지않았나 싶다.우선 제목부터가 논리성이 약하다.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승리주의」라는 경쟁을 본질로 한다.물론 이 경우는 법제와 도덕성의 링위에서 가능하다.약 육강식이 지배하는 밀림의 법칙과는 다르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뜻있는 정치지도자가 정권을 잡아 국가에 헌신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목표가치다.생소한 조어지만 「승리주의」「승리이데올로기」를 부정하거나 이것을 「신종 전염병」으로치부할 수는 없다.
孫교수는 DJ가 승리이데올로기에 감염됐다면서 다음의 몇가지를들었다.첫째는 보수화.수구화다.DJ는 기본적으로 보수 정치인이다.역대 독재정권이 덧칠해 과격.진보주의자로 비쳐졌을 뿐이다.
40년동안 일관해온 그의 정치노선은 반공 중도우 파 노선이다.
정계입문 이래 혁신 정당을 거부하고 보수야당 본류를 지켜왔으며한일회담.월남파병등 대립적 이슈에는 강경 대신 온건노선을 유지해 왔다.
둘째는 경제제일주의다.孫교수는 「개발독재의 성장제일주의」를 연상시킨다면서 경제제일주의를 비판했다.DJ는 원내활동의 대부분을 경제상임위에서 보냈을 정도로 경제통이다.대중경제론의 주창자이며 이것은 하버드대에서 영문으로 번역되고 교재로 채택된 바 있다.현재 우리의 경제사정은 대단히 어렵다.책임있는 정치인의 경제를 살리자는 경제제일주의 정책을 탓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셋째는 여당 영입인사에 대한 색깔론이다.孫교수의 지적대로 DJ는 지역주의.용공조작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세차례의 대선에서 패배했다.누구보다 색깔론의 피해자고 지금도 틈만 있으면 마녀사냥의 표적이 된다.때문에 DJ는 자기들(신한국 당)은 간첩죄로 구속된 김낙중씨로부터 돈받은 사람을 공천해 국회의원까지 시키면서 상대방을 매도하는 매카시즘을 비판한 것이다.결코 여당에 들어간 재야인사들을 싸잡아 색깔론을 제기한 것은 아니다.이부분은 孫교수가 곡해한 것같다.
넷째는 유신,5.6공세력과의 연대문제다.DJ는 지금까지 정치보복 금지를 신조로 삼아 왔다.군사재판의 최후진술도 이것이었다.구정권 인사들중 개과천선하고 민주발전에 동참한 인사들을 포용하는 것은 우리 정치문화의 상황논리라고 본다.잘못 되기는 친일파와 군사독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현대사에 있다.
다섯째는 호남.충남.경북을 묶는 「역(逆)지역연대론」이다.과거 3당 합당은 그야말로 이념과 정책과 노선이 상이한 세 정파가 밀실에서 국민과 당원들 몰래 이뤄낸 정치적 결착이었다.그러나 지금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 데 「정책연합」을 시험중이다.결코 야합이나 결착과는 다르다.
孫교수의 여러가지 비판을 이해하면서도 한가지 아쉬운 점은 DJ의 역할도 인정해주는 아량을 보였으면 하는 것이다.예컨대 북한 핵문제로 한반도에 위기가 감돌 때 카터를 방북(訪北)시켜 해결의 실마리를 푼 위기관리 능력이나 최근 무장공 비 침투로 다시 남북대결이 치열할 때 주변 3대국의 주재대사를 만나고 중국으로 달려가 북한 억제력을 제기한 외교역량등은 인정해줄만하지않은가 싶다.비판의 생명력은 균형성에 있다고 하겠다.
김삼웅 아태재단 기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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