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불빛 아래 사랑도 역사도 흘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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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홍등’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17~19일, 031-783-8000),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21~22일, 042-610-2222),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24~25일, 1577-7766),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27일, 031-230-3440~2).
국립극장 해오름극장(29~30일, 02-2280-4114)

色)은 자연이 내린 것인데, 붉은색은 이제 한 인간의 것인 양 돼버렸다. 선명한 붉은색을 자신의 브랜드로 독점해 버린 중국 연출가 장이머우(張藝謀·58).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을 통해 스케일과 색채의 향연을 유감없이 보여준 그가 연출한 첫 발레극 ‘홍등’이 마침내 국내 관객을 찾았다. 중국이 자랑하는 국립중앙발레단의 첫 내한 공연이기도 하다.

홍등 40~50개가 등장하는 강렬한 장면으로 막을 여는 ‘홍등’은 장이머우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1991)에서 줄거리를 가져오되 무대에 맞게 간추렸다. 각기 다른 아픔과 욕망을 품었던 주인공과 세 부인, 하녀의 관계를 생략하고 부인을 둘로 압축했다.

대신 남자 인물들의 비중을 키워 남편이 무대 전면에 등장하는 한편, 주인공의 옛 연인으로 경극 배우가 새롭게 설정된다. 서사보다는 2인무·3인무 등 ‘춤’에 극의 중심을 실으려는 의도다. 가신과 시녀, 경극배우들이 어우러지는 군무 또한 대극장 무대를 압도한다.

65명의 출연진과 70여 명의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블록버스터 무용극’이지만 무대 세트는 오히려 간소하다. 흰색과 붉은색 중심으로 강렬한 색감의 대비를 노린다. 주인공과 둘째 부인의 첫날밤 장면에서 붉은 천을 이용한 상징적인 그림자극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은 여운을 남긴다. 집 안에서 벌어지는 경극 공연은 주인공과 옛 연인이 재회하는 계기이자 중국 전통의 화려한 연회를 극중극으로 펼쳐놓는 구실을 한다.

이미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대형 무대를 연출한 바 있는 장이머우는 처음 도전하는 장르에서 고전 발레를 서사 속에 자연스레 녹이는 쪽을 택했다. 대신 경극을 삽입함으로써 동서양 문화의 충돌과 조화라는 의도를 살려 넣었다.

제작진의 구성에도 이런 융화가 반영돼 치파오에 기반한 퓨전 의상은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의상 디자이너 제롬 카플랑이 디자인했다. 작곡가 천치강, 안무가 왕신펑 등 중국 최고 인력이 의기투합한 ‘홍등’은 2001년 초연 때는 쓴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10차례 대본 수정을 거쳐 2003년 환골탈태했고, 해외 투어에서도 “격정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극”(영국 ‘더 타임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1년 초연 때부터 주연으로 활약, 국내외에서 100회 이상 공연한 여주인공 역의 쭈옌과 남주인공 역의 황쩐은 내한 기자회견에서 “한류의 나라 한국에서 공연하게 돼 즐겁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자오루헝 단장은 “서양 발레를 해도 중국 무용수에겐 숨길 수 없는 중국적 특성이 드러난다”며 “같은 문화권의 한국 관객이 손쉽게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발레 ‘홍등’은 성남아트센터를 시작으로, 29·30일 서울 국립극장까지 5개 도시 대극장을 순회 공연한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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