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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는 또 다른 꿈 열어준 영원한 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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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설악산 울산바위는 내 애인입니다. 안 보면 보고 싶고, 언제 갈까 그 궁리만 합니다. 그 바위에서 떨어져 의사의 꿈을 접었지만 그래도 산은 저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40년 넘게 산에 매달려 살아온 홍석하(60·사진)씨. 백두대간진흥회 회장 겸 월간 ‘사람과 산’ 사장이다. 그는 산사나이 답지 않게 체형이 둥글다. 20대 때 울산바위에서 암벽등반을 하다가 60m 아래로 떨어져 뇌를 다쳤다. 그 뒤 줄곧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부작용으로 그리 된 것이라고 한다.

홍 사장은 고교 시절부터 산악부원으로 활동했다. 의대에 진학해서도 공부만큼 등산에 빠졌다. 교수와 가족들이 학업에 방해가 된다며 등산을 못하게 하자 몰래 단화를 신은 채로 암벽을 탔다. 그는 산과 바위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다 울산바위에서 추락 사고를 당했다.

“추락 뒤 의식이 없다가 깨어나 보니 병원이더군요. 열흘이 지나 있더군요. 모든 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6개월 입원했다 퇴원했습니다. 의대를 졸업할 수는 있어도 의사 국가고시는 볼 수 없다고 하더군요. 몸을 다쳐서 산과의 인연도 이걸로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그 뒤 몇 년을 절망 속에 살다가 돌아간 곳은 역시 산이었다. 30대 중반에 된 그는 산악사전 발간을 위해 백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남극에 가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에 가기 위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였는데 1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지금 10억 정도 되니, 그 당시론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죠.”

1985년 11월 38세였던 홍 사장은 한국남극관측탐험대를 이끌고 세계에서 여섯 번째, 한국에서 최초로 빈슨 매시프에 올랐다. 이듬해인 86년 한국은 33번째로 남극 조약에 가입했고 88년에는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했다.

홍 사장은 남극 길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8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산악사전 발간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대신 89년 월간 ‘사람과 산’을 창간했다. ‘한국의 100대 명산’ 등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산악문학상’을 만들어 산과 관련된 문학 활동을 독려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경영악화로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잡지만큼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냈다. 잡지를 활용해 백두대간 홍보 활동도 펼쳤다.

“사람들이 백두대간이 뭔지도 몰랐을 때였습니다. 2002년 캠페인을 펼치면서 교과서에도 백두대간이 실렸습니다. 이젠 그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백두대간 종주 여행도 많이 하지요.”

올해로 14회를 맞는 산악문학상에 대한 애착도 강하다. “해가 갈수록 출품작이 늘고 있습니다. 이번엔 시가 300편이나 들어왔어요.”

2006년에는 사단법인 백두대간진흥회를 설립하고, 아시아 산악문화 발전을 위해 ‘황금 피켈 아시아상’을 제정했다. 19년동안 산 관련 잡지사를 운영하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제 산악상을 만든 공로로 그는 17일 ‘제7회 산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훈장을 고사할까도 했지만, 죽을 때까지 좋은 일 하라는 뜻으로 알고 받겠습니다. 대한민국 산악문화를 이끈다는 자부심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산이 좋은 걸까. 이유를 묻자 “산에 오르는 것은 참선을 하는 것과 같다”라고 답했다. 바위를 타는 동안은 속세의 생각을 모두 잊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아내와 세계일주를 하는 게 꿈이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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