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예술영화 2편 관객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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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잃어버린 순수」를 찾아나서는 현대인들의 비극적인 여정을 담은 유럽예술영화 두편이 19일 나란히 개봉된다.아이슬란드감독 프리드릭 소 프리드릭슨 감독의 첫 국내소개작 『자연의 아이들』과 그리스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최신작 『율리 시즈의 시선』.절제된 대사,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불행한 결말등 할리우드영화와는 다르게 내용을 조용히 「음미」하는 작품이어서 대중성은떨어지지만 예술적 향취와 완성도는 뛰어난 영화들이다.
가장 건강한 삶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일 것이다.동틀 때 일어나 땀흘려 노동하고 해가 질 때 잠자리에 드는 생활.문명이자연의 리듬을 거스르기전 우리는 자연의 품안에서 넉넉함을 누렸다. 유럽의 변방인 아이슬란드의 영화를 세계에 알린 『자연의 아이들』은 깨져버린 「자연과의 융화」에 대한 애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도시의 양로원을 뛰쳐나온 남녀노인이 지프를 훔쳐 고향을 찾아떠나는 여정 속에는 도시와 문명의 삭막함,세 대간의 갈등,고향을 향한 그리움등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문제들이 녹아들어 있어 친근하다.
이 여정의 주인공은 80을 눈앞에 둔 농부 게이리와 그의 어릴 적 첫사랑이었던 스텔라.농촌에서 건강한 삶을 살았던 마지막「자연의 아이들」이다.
혼자 사는 쓸쓸한 시골생활에 지친 게이리는 짐을 싸 도시 아파트촌의 딸네 집을 찾아간다.그러나 거기에서 기다리는 것은 「도시의 아이」 손녀와의 마찰 뿐.가족간의 갈등을 견디지 못한 딸은 아버지를 양로원에 기탁해버리고 만다.양로원에 서 우연히 스텔라를 만난 게이리는 소외와 고립의 도시를 박차고 바다와 푸른 초원,추억이 자리한 고향 혼스트라디를 찾는 귀향길에 나선다.행복한 미소를 띤 채 고향의 바닷가에서 눈을 감은 스텔라와 그녀의 관을 짜는 게이리의 경건한 모습 은 영화의 절정을 이룬다.프리드릭슨감독은 이 영화를 『인생의 황혼기에 대한 로드무비』라고 표현했다.아이슬란드의 자연풍광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영상미는 이리 크리스틴슨을 세계적인 촬영감독으로 부상시켰을 만큼신비롭다.91년 몬트리올영 화제 최우수 예술공헌상등 23개 이상의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다.
얼마전『안개 속의 풍경』으로 국내영화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테오 앙겔로풀로스감독은 『율리시즈의 시선』으로 관객과 함께 또하나의 여정에 나선다.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에 바탕을 두고 20세기말의 역사는 과연 어디로 흐르고 있는 가란 무거운질문을 던지는 것이다.여행의 안내자는 미국망명생활 35년만에 고국 그리스로 돌아온 영화감독 A.그는 그리스 초창기 영화감독인 마나키아형제가 발칸반도의 여러나라을 돌아다니며 역사와 관습을 담았다고 전해지는 세통의 필름을 찾아나선다.
필름의 미스터리가 A를 인도한 곳은 알바니아와 부쿠레슈티.베오그라드를 거쳐 전쟁의 포화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 사라예보다.
이 여정에서 A는 자신의 과거를 만나고 머리와 다리가 해체된 채 흉칙한 몰골을 한 레닌의 거대한 조각상을 만난 다.또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상처받은 세명의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데이 여인들의 사랑은 너무나 절실하고 절박한 슬픔을 관객에게 전달해준다.
사라예보에서 마침내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이보 레비를 만나 현상에 성공하지만 현상필름이 마르기전 안개낀 날의 축제에 나선레비는 다른 많은 시민들과 함께 군인들에게 사살당하고 만다.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울리는 총성과 비명.
절규….감독은 고대 그리스문명의 발상지에서 지금은 「유럽의 화약고」로 변해버린 발칸반도의 아픔을 통해 세기말과 다가오는 21세기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이야기한다.
상영시간 2시간40분인 이 영화에서 앙겔로풀로스감독은 「길게찍기의 미학」을 확인시켜주듯 롱테이크를 많이 구사하고 대사를 절제해 관객으로 하여금 이 여백을 생각으로 채워 줄 것을 요구한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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