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노변담화에서 2% 부족했던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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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7시15분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일명 ‘노변담화’)이 첫 전파를 탔다. KBS 라디오를 비롯한 전국 8개 방송사를 통해서다. “요즘 참 힘드시죠”란 첫마디로 시작한 연설은 8분30여 초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경제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날 오전 기자는 10여 명의 정치권·학계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변담화에 대한 소감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노변담화를 직접 들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아직 듣지 못했다”거나 “인터넷에서 내용만 봤다”고 답했다. 청와대가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에 대해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자평도 나왔지만 청와대 밖의 평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 같은 반응은 사실 당초 노변담화 얘기가 나올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라디오 연설은 이 대통령이 ‘소통’의 통로로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가 노변담화의 형식 자체가 소통에 걸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먼저 제기된 문제점은 매체의 적합성 여부다. 이 대통령은 노변담화의 형식을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행했던 라디오 연설에서 차용해 왔다. 당시는 라디오가 최첨단 미디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을 비롯한 쌍방향 통신이 즐비한 상황이다. 라디오는 ‘일방통행’의 올드 미디어다. 이날 이 대통령의 연설 역시 8분30초 동안 이어졌지만 대통령의 ‘연설’로만 채워졌다. 요즘 라디오 방송 대부분이 택하고 있는 문자메시지나 인터넷을 통한 청취자 참여도 없었다.

그래서 ‘홍보만 있고 소통은 없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민 여론이 악화된 것을 자신들의 입장이 잘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현 정부에 대해 얘기되는 ‘소통 부재’의 의미에는 정부의 홍보 부족뿐 아니라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 즉 ‘청취 부족’이란 의미도 담겨 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의 생각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국민들이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국민들의 생각을 대통령이 듣고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는 “대통령이 말하는 것뿐 아니라 각계각층 인사들을 청와대로 부르거나 직접 찾아가 얘기 듣는 모습을 국민들은 더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했다.

미디어의 적합성과 일방적 홍보 논란을 뛰어넘는 더 근본적 문제가 있다. 바로 정권의 신뢰성 문제다.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에도 노변담화와 같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 방송 뒤 막을 내렸다. 당시 정부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정부가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아무리 홍보를 해도 먹히지 않더라”고 회고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경제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러나 ‘2% 부족한’ 점이 있다. 이 위기가 바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날 담화에선 국민들에게 “믿어 달라”고 말하기 이전에 국민의 불신을 없앨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과 대안들이 제시됐어야 했다.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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