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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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홀아비 모임이라니요?』 실없는 소리도 한다싶어 되물었다.
『진지한 모임입니다.한달에 한번씩 만나서 필요한 지식을 흡수하는 공부 서클이지요.말하자면 본연의 모습의 심포지엄입니다.
「심포지엄」의 어원(語源)을 아십니까? 「향연(饗宴)」이란 뜻의 그리스말 「포시온」입니다.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때부터 대화와 토론은 늘 향연 가운데 했답니다.향기로운 포도주,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나누는 아름다운 이야기….이것이 본■ 의 심포지엄인 포시온의 모습이었지요.여기에 또 한가지 빠져서는 안될 것이있다고 생각합니다.미인이지요.미주(美酒)와 미식(美食)과 미화(美話)와 미인(美人)….그래서 서여사님을 모시려고 결의한 겁니다.』 시큰둥한 을희를 의식해서인지 고교수는 장황하게 설명을늘어 놓았다.의사.변호사.검사.회계사.건축사 외에 대학 강사도두어명 있다고 덧붙였다.
『알아들었어요.요리사가 필요해 나더러 오라고 하시는군요.어째맨 「사」자 돌림 인사들이에요?』 전화 너머로 고교수도 쓴웃음을 웃었다.
『벼르고 한 건 아닌데 구색맞추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플라톤은 남자 친구를 사랑했다면서요? 그의 향연에 여자 친구가참여했다는 말은 못들었어요.』 『우리는 홀아비지만 남성지향주의는 아닙니다.』 얘기가 엉뚱한데로 흐르는 바람에 전화를 끊고나니까 서클 참가를 허락한 결과가 되었다.
지정된 날,지정된 시간,지정된 장소로 가보니 아담한 연립주택이었다.한 뜨락 안에 30평 남짓한 새 벽돌집 두채가 나란했다. 운치있게 휘어진 소나무 가지 사이에 켜진 문등(門燈) 아래고교수와 고교수 동생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다.
고교수 동생은 종합병원의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다.그도 독신자다.아니 총각이다.마흔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는 까닭을 그의 형도 늘 의아해하고 지냈는데,그들은 한 뜨락 안에 나란히 집을 지어 신축 잔치를 펼 참이었다.
『아니,집들이할 양이면 새애기를 통해서라도 귀띔해줄 것이지 이렇게 망신을 시킨단 말입니까?』 사돈댁 집들이에 빈손으로 온을희를 왁자한 박수가 맞아들였다.홀아비 서클의 까마귀떼였다.
『자,그럼 이제부터 우리들의 우정탕(友情湯)요리를 시작하기로하지요.가져오신 재료를 다 넣어주세요.』 고교수가 마루 한가운데 놓인 가마솥 뚜껑을 열었다.구수한 고깃국 냄새와 함께 김이서렸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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