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초점>드라마 '애인'의 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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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사이 「애인」이라는 단어가 화려하게 컴백했다.「남자친구」니「걸프렌드」니 하는 말에 밀려나 그동안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가 드라마 『애인』(MBC.월화 밤9시50분)덕택에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은 애인이라는 말 대신 남자친구.여자친구라는 말을 더 즐겨 써왔다.아마도 애인이라는 말이 풍기는 조금은촌스럽고 은밀한 의미보다 당당하고 개방돼 보이는 서양식 「친구」라는 말을 선호했던 모양이다.
사실 드라마 『애인』의 소재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단지 소재면에서 차이가 있다면 종래의 소위 불륜이라고 분류되는 남녀관계를 다룬 드라마들이 유부남이나 유부녀가 미혼의 남녀와 갖는 관계를 다룬 반면,『애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양쪽모두 자녀를 둔 기혼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적인 차이점보다 더욱 시청자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불륜 당사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의 관계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부각시키고 있다.
과거의 드라마에서는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불륜관계로 인해 피해보는 당사자 가족들의 고통에 놓여있던 것이 보통이었다.그래서 시청자들의 눈물을 많이 자아내기도 했던데 반해 『애인』은 그러한 요소를 적절히 배제함으로써 불륜이라는 거부감을 덜어내고 있다. 또한 연출에서도 직설적이고 대담한 클로즈업 샷을 사용해 섬세한 심리묘사는 물론 당사자들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더욱 많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 드라마가 진부한 소재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자.
첫째,종래 이런 종류의 드라마에선 상대여자가 전업주부였는데 반해 『애인』에서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직업여성이므로 외출이 자유롭기 때문에 그들의 만남이 더욱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어쩌면 여성들의 사회참여도가 높아지면서 행동반경의 폭 또한넓어지는데서 얻어지는 자연스런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동안 우리나라 부부관계는 대부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적인 관계로 이루어져왔다.그래서 결혼후 가정이라는 안정된 조건을 바탕으로 남자들은 사회적으로 계속 뻗어나가지만 여자들은함께 평행하게 나간다기보다 마치 자전거 타는 남 자의 등뒤에 앉아 저절로 따라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다보니 여자에게 있어 남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남자이고,가정은 우주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우주를 지배하는(?) 남편들이 여자들을 끊임없이 실망시키고 슬프게 할 때어떤 여자인들 한번쯤 딴 남자를 생각지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남성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는 사회변화를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다.이런 남녀의 심리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이 드라마는 「대리만족」이라는 역할수행에 있어 일단 성공한 셈 이다.
그러나 TV를 「문화적 포럼」의 장으로 규정한 어떤 학자의 말이 시사하듯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포럼속에 포함되는 하나의 「관습깨기 게임」이다.
우리의 사회문화적 관습은 TV라는 공적인 토론의 장을 통해 창조되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하며 또한 새롭게 변형되기도 한다.
따라서 『애인』의 윤리성을 논하기 이전에 그러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애인』이라는 사회적 담론을 놓고 이어지는 우리들의 논쟁은 끊임없는 사회변화속에서 자연스레 거쳐야만 하는 갈등과정이며 성숙한 사회를 위한 디딤돌이다.
황인성 대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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