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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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서귀포에서 여관을 하신다고요.부인이 애쓰시겠네요.』 대학교수 아닌 학자 아내들은 으레 남편 대신 벌이에 골몰하게 마련이다.바닷가 집에서 민박(民泊)을 친다기에 그녀 또한 그런 것이려니 했다.
『아내는 없습니다.이혼했습니다.민박은 어머니가 치십니다.』 짤막한 대답을 듣고 후회했다.실없는 말로 남의 사생활을 건드린꼴이 되었다.
그나저나 이혼한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싶었다.
을희 나이 또래 가운데는 「6.25」라는 동족 상잔(相殘)의난리 통에 생이별하고는 끝내 이혼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더러는배필이 죽은 줄만 알았다 재혼해버린 이도 있었고,더러는 다른 상대와 정분이 나 갈라선 경우도 있었다.
보다 더 위 또래에도 사연은 다르지만 이혼한 이들이 두루 손꼽혔다.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많았다.일찌감치 시골 부모들이 정혼(定婚)한 처녀와 결혼했는데,서울이나 일본 등외국에 유학갔다 「신여성」을 만나 연애해 재혼하 게 된 경우였다.그 중에는 본부인이 삯사느질해 벌어 부친 학비로 공부하다 졸업 후에 이혼해버린 유명인사도 있었다.
커다란 사회 변동의 틈새에 생긴 남녀간 갈등 결과의 한 양상이라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요사이 이혼이 부쩍 늘어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젊은이 사이의 파경(破鏡) 원인 중에는 혼수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한심스런 이야기도 들리지만 아들 딸 낳고 잘 살다 중도에 헤어지는 중년 이상의 부부가 많은 것은 왜일까.
성격 차이.한마디로 그렇게 처리할 수만은 없는 사회병리현상이아닐까. 이혼녀의 하나인 을희는 얼마간의 책임을 느끼며 고달파보이는 홀아비의 어깨를 바라보았다.실밥이 터져 삐져지고 있는 것이 처량했다.
『책 계약은 됐습니까?』 고교수가 전화를 걸어 챙겼다.
『써주시겠다고는 했는데,언제까지라는 탈고 기약은 못하겠다 하셨어요.깔끔하고 꼼꼼하신 분 같아요.』 을희의 말에 고교수는 웃었다. 『혼자서 쌍동이를 키우고 있답니다.제주도에 틀어박혀 학문하는 것이나,홀아비가 쌍둥이를 키우는 일이나 보통 남자는 못해내는 짓이지요.독한 사람입니다.』 『쌍둥이를?』 처음 듣는소리에 귀가 쭝긋했으나 고교수는 자기 말만 전했다.
『홀아비 모임을 만들었어요.소서노여대왕(召西奴女大王)을 고문으로 모시기로 했으니 참석해 주십시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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