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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31.신호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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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즈음 신호그룹 임직원들은 비슷한 스타일의 넥타이를 매고 다닌다. 그룹 상징처럼 돼버린 이 넥타이는 8월31일 이순국(李淳國.54)회장이 홍익대에서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을 기념해 전 임직원들에게 나눠준 선물이다.
李회장은 넥타이를 선물하며 편지도 넥타이 포장 속에 함께 넣어 보냈다.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는 제목의 이 편지는 李회장이 25년전 사업을 처음 시작할 무렵 자신이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임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72년 李회장은 공인회계사 개업을 하면서 미국에 있는 한 교포 지인(知人)으로부터 넥타이를 선물받았다.
8개의 영문 알파벳들이 층을 이루며 연속적으로 나열된 무늬의넥타이였다.
「Y.C.D.N.S.O.Y.A.」 무심코 넘겨버릴수도 있었으나 李회장은 이 알파벳들이 무의미하게 나열된 문자가 아닐 것이라고 판단,선물을 준 사람에게 그 뜻을 물어보았다.
예상대로였다.
『You Can Do Nothing Sitting On Your Armchair.』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일할 것을 독려하는 경구(警句)의 머리 글자였다.
李회장은 자신이 나태해질 때마다 이를 상기하며 경영인으로서의자세를 가다듬었다고 한다.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이번에는李회장 자신이 전 임직원들에게 같은 내용의 알파벳을 담은 넥타이를 선물한 것이다.
봉급쟁이로 출발한 그가 오늘의 신호를 만들기까지 열정과 근면함이 가장 큰 밑천이었던 것이다.
李회장은 지금까지 인수한 기업에 「점령군」을 파견한 적이 없다. 기업을 인수하면 슬림화가 불가피한데 점령군까지 파견하면 기존 사원들의 반발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李회장의 지론이다. 李회장은 77년 삼성특수제지 부사장 재직시절 회사를 그만두고 충남온양에 온양팔프를 설립,제지사업에 뛰어들었다.
***인수기업에 自生力키워 이후 제지회사만 6개를 인수.합병해 제지그룹으로의 기틀을 마련하고 현재는 철강.전자.화학.금융.건설등으로 사업을 다각화,종합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올 10월 현재 상장사 8개,비상장사 16개,해외법인 11개를 거느리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그룹 전체적으로 1조4천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李회장은 잇따른 기업인수로 그룹을 축성한 특이한 기업인이다.
현재 35개의 계열사중 80% 이상이 부도로 쓰러졌거나 쓰러져가는 기업을 인수해 회생시킨 것.
李회장은 「잘나가는」기업을 인수대상으로 삼은 적이 결코 없다.그것도 해당기업이나 채권은행측에서 李회장을 찾아와 인수해달라고 먼저 요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수기업의 90%가 李회장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다.『다른 사람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항상 인수 뒤에 남는 후문이다. 李회장은 홍익(弘益)사회 구현을 경영이념으로 삼고 있다. 87년에는 개인주식 30억원을 현물출자로 내놓고 홍익복지기금을 설립했다.
李회장은 언젠가는 자신의 주식 전액을 종업원들에게 환원하고 자신은 전문경영인으로만 남겠다는 희망도 피력하고 있다.
개인소유 주식을 계속 근로자 복지기금으로 출연하면서 종업원 집단지주제로 회사경영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룹전체 사장단 회의는 한달에 한번 정도만 열리며 李회장 주재아래 각사 대표이사들이 모두 모여 그룹의 주요안건을 논의한다.이와 별도로 그룹의 주력인 제지부문은 김우식(金雨植)제지담당부회장 주재아래 매주 월요일 이사급 이상 임원 전원이 모여 주례회의를 갖는다.
신호그룹의 사장단은 외부영입파가 주류다.
80년대 들어서면서 그룹의 사세가 급성장,외부로부터 많은 수혈을 했기 때문이다.
김우식 제지담당 부회장은 그룹의 주력인 제지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사장단 외부영입派 주류 그는 고려대 졸업후 대원제지에 입사,제지업계와 인연을 맺었다.신호그룹의 모태인 온양팔프(현 신호페이퍼)상무로 영입됐다.
오랫동안 영업부서를 진두지휘해 업계내 왕발로 통한다.두주불사(斗酒不辭)형으로 성격도 호탕해 사내에 따르는 직원들이 많다.
백성하(白成河)신호제지 사장은 영어.일본어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해외 제지산업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이 있어 그룹내 해외통으로 꼽힌다.
박영윤(朴英鈗)신호스틸 사장은 66년 연합철강을 시작으로 철강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신호그룹과는 93년 극동산업에 입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정수웅(鄭秀雄)동양철관 사장은 한국강관(현 신호스틸)부사장을지냈으며 지난 2월 동양철관이 신호그룹에 인수되자 동양철관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순욱(李淳旭)신호전자통신 대표이사 부사장은 삼성전자 해외부문에서 일하기도 했다.
李회장의 실제(實弟)로 형의 요청에 따라 신호테크 전무로 옮겼으며 현재 그룹의 전자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김한구(金漢九)청주민방추진사업단 사장은 언론인 출신.
동양통신사(현 연합통신)사회부장.부국장을 거쳤으며 80년 동양철관 상무이사로 자리를 옮겼다.이후 사장까지 지냈으며 한때 경인창업투자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96년 신호에 합류해 청주민방사업단 사장을 맡아 그룹의 당면숙원사업인 민방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은 미원그룹편> ※본사는 그동안 본지에 연재됐던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30대 그룹의 기사를 대폭 보완,10월 중순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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