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단체들의 외침 경청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개혁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어야지, 개혁을 위한 개혁이어서는 안된다"는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부회장의 말은 요즘 재계가 느끼고 있는 답답한 심정을 잘 보여준다.

사실 총선이 끝나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가시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규제의 강도를 더욱 강하게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또 대우종합기계의 매각에 대해 노조가 우선권을 갖겠다고 덤비는 등 노조의 경영참가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최근 정부 정책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경제5단체 부회장들의 쓴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리는 것도 이 같은 상황 때문이다.

우리가 누차 강조했듯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이념논쟁이 아니다.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업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일보다 시급한 과제는 없다.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고, 계좌추적권 부활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재계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 주요 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넘는 시점에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을 축소하는 게 기업경영권 방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야 한다. 재계의 주장이 과거 재벌의 문어발식 팽창을 재연하기 위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기업경영의 선진화만 요구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도외시하면 우리나라엔 사람을 많이 쓰지 않는 몇몇 대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만 남게 될 것이라는 지적(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가까운 장래의 우리 모습을 예언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판국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기대하긴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65조원이라는 돈을 쌓아만 놓은 채 움직이지 않는 까닭을 정부는 잘 살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