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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민통선 주변… "석 달째 빚만 쌓이는 지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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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파도를 오른쪽으로 끼고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 민간인 통제선이 나온다. 그 너머에 있는 금강산. 그러나 길은 벌써 3개월째 끊겨 있다. 7월12일 시작된 금강산 관광 중단의 한파는 동해 금강산 경제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충격파는 서해안에 까지 미쳐 개성 공단에도 저기압골을 형성했다. 특히 금강산에 거의 맞닿은 고성은 ‘두집 건너 한 집이 파산이 나는’ 재난에 가까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명박 찍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금강산 관광이 잘 될 것이란 희망을 품고 1억원씩 투자했던 서민의 가게엔 하루 한 두명 손님이 들르는 정도다. 중앙SUNDAY가 공황상태인 동해 금강산 경제권과 개성 공단을 찾았다.

9월 초순 외금강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찍은 온정리 광장, 지난해 이맘때쯤엔 관광객이 바글바글 했지만 지금은 썰렁하다. 오른쪽 큰 건물은 이산가족 면회소다.

민통선 입구 바로 아래엔 건어물 판매점 ‘끝집 오징어’가 있다. 주인 강준영(44)씨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금강산 관광 중단 때문이다. 가게를 찾아 사무실 겸 내실로 쓰는 방에 앉았는데 바닥이 냉골 같다.
“보일러를 못 고친 지 오래다. 돈이 없다. 그래서 차다.” 내뱉듯 말하는 얼굴에서 스트레스가 뿜어 나온다.

-사정이 어떤가.
“석 달째 지옥이다. 빚잔치다. 전기세를 두 달이나 못 냈다.”

-매상은.
“없는 날도 있고 1만~2만원 버는 날도 있다. 혹시나 해서 문을 못 닫을 뿐이다.”
경북 봉화에서 30대 후반에 농협 소장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은 2000년 퇴직 직후 굴러내렸다. 3000만원 퇴직금으로 낙산에서 민박집을 했다 망했다. 노점상·막일꾼으로 떨어졌다.

통장에 50만원만 남은 2003년 금강산 관광이 나타났다. 희망을 품고 1억원 빚을 냈다. 선금으로 집세 5500만원을 내고, 5000만원 정도 건어물을 샀다. 관광 중단 때까지는 괜찮았다. 월 매상이 많을 때는 6000만원. 이문은 박했지만 비용 떼고 남은 돈으로 사채 4000만원은 갚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만 일이 터진 것이다.

가게엔 손님 발길이 끊겼어도 돈은 여전히 들어간다. 선지급 월세 150만원은 앉아서 까먹는다. 전기세·이자·공과금이 월 60만원이다. 이자는 카드로 돌려막고 있지만 이번이 마지막 같다. 생활비도 없다. 속초에 사는 고1 딸과 중2 아들의 학원비 30만원도 없다. 애들이 “아빠 힘드니 안 다니겠다”고 했다. 애들 살림을 따로 할 수 없어 친척집으로 보냈다. 부부는 쌀을 절약하려고 세 끼 식사도 두 끼로 줄였다.

운도 없지, 강씨는 지난해 4월 뇌출혈을 당했다. 약값이 월 30만원인데 돈이 없다. 절망이다. 불면증이 찾아왔고 술을 찾았다. 소주 세 병을 마셔야 잔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태운다. 뇌출혈 환자에겐 치명적이다.

그렇다고 장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오징어 생물 300만원어치를 외상으로 가져와 말리고 있다. 재개의 날을 위한 준비다. 그러나 오징어 손질을 하는 그의 손에 생기가 없다.

“노가다로 하루 8만원 벌 때가 차라리 좋았다. 지금은 막일을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된다.” 푸석한 얼굴, 멍한 눈. 다시 담배를 피워 문다.

-어쩌면 좋겠나.
“대통령은 앉아서 세 끼 먹지만 나는 하루 두 끼밖에 못 먹는다. 이 대통령이 밉다. 안 풀어주면 자살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이 관광 중단의 원인을 제공한 건 알지만 그런 사정을 생각하기엔 자신의 형편이 너무 어려운 듯했다.

부인은 남편이 앉으면 TV만 본다고 했다. 관광 재개 소식이 있을까 해서다. 가게를 나선 게 낮 12시30분쯤, 그때까지 손님 한 명도 없었다. 기자가 1만원어치 돌미역을 샀다. 그게 첫 마수걸이였다.

관광이 중단되면서 해금강호텔 인근 주차장에 하염없이 서 있는 관광버스들. 오른쪽은 금강산 남북출입사무소 지하에 있는 관광객 대기실, 역시 썰렁하다. 사진제공=현대아산, 안성규 기자

 
곤두박질한 중산층의 꿈
강씨 가게에서 남으로 40m쯤 되는 곳에 있는 식당 ‘오며가며’의 주인 김정희(46)씨의 사정도 딱하다. 겉보기에 김씨의 금강산 사업은 그럴듯하다. 금강산 남북출입사무소(CIQ) 2층, 민통선 코밑, 안보교육관에 세 개의 식당이 있다.

관광이 시작되기 전 고성의 통일전망대 관광객을 겨냥해 7년 전 문을 연 안보교육관 식당은 하루에 손님 1600명을 받기도 했다. 장사가 잘돼 금강산 관광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3년 전 CIQ 식당을 열었다. 또 1년 전 ‘오며가며’를 냈다. 세 개 식당에서 한 달 순이익이 500만원을 넘었다. 김씨는 “큰돈은 못 벌어도 쪼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7월 곤두박질이 시작됐다. CIQ 식당은 현지 직원 30명 정도를 상대로 영업한다. 한 끼 3500원인데 버는 것보다 나가는 게 더 많다. 분기당 월세 624만원, 인건비·부식비 등 부대비용이 월 200만원 수준이다. 안보교육관 식당도 직원 13명이 먹을 뿐이다. ‘오며가며’는 민통선을 드나드는 일꾼들만 찾는다. 세 식당의 적자가 월 850만원이다. 1억원 빚의 이자도 있다.

남편은 허리가 아파 일을 못한다. 아들(11세), 시어머니를 포함해 세 식솔을 책임진 김씨는 한 달 전부터 혈압이 높아져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두통약을 끼고 산다.

-어떻게 할 건가.
“연말까지 못 버틴다. 식당 하나는 없애고 직원도 해고할 거다.”

-정부에 서운한가.
“대통령이 밉다. 진짜 서민들을 살기 힘들게 만든다. 내 주변에 ‘이명박 찍은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오며가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 ‘금강산 가는 길’은 오래전 폐업한 듯 잡초가 무성했다. 다시 남으로 더 내려오다 해금강 식당에 들렀다. 시가 28억원, 3000평 부지에 들어선 대형 식당이다. 사장의 딸인 박혜인(33) 실장도 한숨으로 시작했다.

-형편이 어떤가.
“못 버티겠다. 손님이 하루 한두 팀뿐이다. 이번 주말까지 열고 휴업할 생각이다.”

280석 해금강 식당은 시즌 때 주말 하루 1000만원도 벌었다. 피크인 지난해 10월엔 월 1억원을 벌었다. 지금은 뒤집어졌다. 매출은 없어도 월 500만원의 운영비는 그대로다. 대출금 6억5000만원의 이자가 월 500만원이다. 세금 600만원은 카드로 막았다. 발생하지 않은 매출과 비용을 포함하면 3개월 손해가 3억원이다. 박 실장은 “명분을 찾아 실마리를 풀어야 하지 않겠나”고 했다.

최북단 항구 대진항에서 조촐한 횟집을 하는 동갑내기 이순자·전옥현(79) 할머니의 삶도 더 고달파졌다. 남편들이 50세 이전에 병으로 사망한 뒤 줄곧 식당을 하는 두 할머니. 검버섯이 얼굴을 온통 덮었고 허리도 굽었다.

금강산 관광이 좋을 때 하루벌이가 15만원은 됐다. 그러나 지금은 한 주에 두어 손님 맞는다. 1000만원 대출 이자 10만원을 내라는 독촉장이 날아오고, 전기세 11만원도 밀렸다가 빌려 냈다. 양념이나 채소 살 돈도 없다. 할머니들은 “운동 삼아 일한다”고 했지만 이 할머니는 “자식 세 명이 다 살기 어려워서…”라고 말끝을 흐린다. 전 할머니는 “남의 집에 얹혀 산다”고 했다.

매운탕을 끓여달라 해도 “부식도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한다. 손님을 쫓는 마음은 어떨까. 할머니들은 “금강산이 잘됐으면 좋은데…”라고 힘없이 말했다.

설악동 숙박업을 강타한 한파
여파는 멀리 설악산까지 미친다. 설악동 번영회의 김창호 회장은 “금강산에 들어가려면 오전 일찍 움직여야 하는데 고성엔 숙박 시설이 없어 관광객의 80%가 설악동과 낙산에서 머문다”고 했다. 설악동 200여 숙박업소 중 20%가 금강산 관광객을 전문적으로 수용한다.

김 회장은 “금강산으로 수학여행 가는 학교가 1년 450개 정도 됐다. 한 학교당 매출이 평균 2000만원이니 전부 90억원 정도”라고 했다. 설악동에 떨어졌을 90억원이 관광 중단으로 사라진 것이다.

2005년부터 금강산 단체 관광객 영업을 해왔던 설악산 파크의 김진대 대표는 “수학여행 세 개가 취소됐고 1일 150명 되던 단체 관광객도 다 사라졌다”며 “그 결과 3개월 사이 4000만원 매출이 사라졌는데 그래도 월 600만원의 비용은 그대로다”고 했다.

김 회장과 김 대표는 “올겨울 내에 조치가 없으면 우린 다 망한다”고 했다. 숙소촌인 설악동 C지구는 9일 초저녁 어둡고 조용했다. 이날 설악산 파크엔 단체 손님 30명이 1층에 머물렀다. 2~3층은 불이 꺼져 컴컴했다. 초췌한 김 대표는 “이래서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북 잡으려다 남 주민 먼저 잡아

고성군은 8월 90개 일반업소, 77개 납품 업체 등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했다. 월평균 판매 감소액이 53개 음식점 3억4000만원, 건어물점 29억원, 5개 숙박업소 2500만원으로 나왔다. 전체론 월 20억원이다. 보고서는 총리실에 제출됐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현지 참여 업체의 누적 손실 100억원, 아산의 누적손실 400억원으로 밝혔다.

재해처럼 느닷없이 발생한 600억원 손실에 대해 정부는 말도 없고 별 대책도 없다. 관광 중단의 영향은 업체와 지역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금강산만 바라보다 탈진한 서민 업소들은 곧 닥칠 겨울에 죽음의 한파가 몰아닥칠 것으로 걱정한다.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에선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문을 닫는다는 얘기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 길들이기에 칼을 빼 들었지만 혼을 내기도 전에 남측 주민이 먼저 쓰러지는 꼴이 됐다. 

고성=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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