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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신 신뢰 주고받아, 친구 얻었다는 만족감 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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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31면

여행용 가방 2개-10000두루, 마음공부 수강료-각 3000두루, 바느질-10000두루, 포도 따기 자원활동-각 5000두루….
대전의 지역 공동체 ‘한밭레츠(LETS)’ 홈페이지에 가면 ‘거래했어요’ 게시판이 있다. 이 게시판엔 회원들이 사고판 거래 대상과 거래 일자, 거래자, 거래 액수 등이 매일 올라오고 있다.
여기에서 ‘레츠’ ‘두루’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레츠’는 지역통화시스템(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을 뜻하며, ‘두루’는 이 공동체에서 쓰는 지역화폐다. ‘두루지기’인 박현숙씨는 “4, 5년 전 지폐로 ‘발행’한 적은 있지만, 두루는 신고된 거래 내역에 따라 개별 회원의 계정을 정리해 나가는 가상의 화폐”라고 설명한다.

가상화폐로 거래하는 국내 공동체 ‘한밭레츠’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일반 거래에 쓰이는 원화와 등가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1000두루의 가치는 1000원인 셈이다. 한 달에 5000원씩 회비를 내고 회원이 되면 누구나 두루로 거래할 수 있다. 다 읽은 책이나 아이 옷, 신발, 가방 같은 물건뿐 아니라 집 수리, 농사일, 외국어·컴퓨터 교육, 자녀 과외 등 다양한 서비스도 거래 대상이다. 자신이 가진 기술이나 노동력과 물품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고, 자신도 제공받을 수 있는 ‘다자 간 품앗이’ 제도다.

현재 한의원 2곳과 의원 4곳, 치과, 동물병원, 약국, 채식 식당, 카페, 학원 등이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다. 모든 가맹점 거래는 30% 이상 두루를 쓰도록 돼 있다. 의원과 한의원의 경우 건강보험 진료는 전액, 보험이 안 되는 일반 진료는 50%만 두루로 받고 있다.

지난해 거래 건수는 7557건. 거래액은 1억4300만원에 달했다. 이 중 현금 거래가 6900만원, 두루 거래가 7400만원이었다. 대전의제21추진협의회 사무처장이던 박용남 현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의 주도로 출범했던 2000년(1000만원)에 비하면 14배 늘어난 규모다. 그러나 박현숙씨는 “거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의 복원”이라고 말한다. “저희도 돈 좋아해요. 하지만 사람이 돈이나 물질만 갖고 행복해지지는 않지요. 두루를 주고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든든한 이웃사촌, 친구가 생긴다는 만족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큽니다.”

달러·원·엔…, 미국 금융위기 속에 통화 가치의 급변동이 멀미를 일으키는 요즘, 마음까지 주고받는 지역화폐 운동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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