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어음과 도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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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35면

내 물건 샀으니 돈 내놔라. 지금 없으니 나중에 주마. 그럼 그걸 문서로 해주라. 이런 식으로 생겨난 게 약속어음이다. 두 사람 사이에 쓰인다. 그런데 장사하는 데는 제3자가 끼어드는 경우가 더 많다. 야, 이 어음 아무개한테 내고 돈 받아라. 이런 걸 환어음이라고 한다. 아무개 역할을 하는 게 주로 금융회사다.

환어음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처음 ‘발명’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아니, 무역이 성해지면서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등장’했는지도 모른다. 이를 이용해 짭짤한 장사를 한 것은 무역상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하던 이탈리아 은행들이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 방코(banco)가 은행을 가리키는 뱅크(bank)의 어원이 됐다고 한다.

예컨대 베네치아의 로시가 동양의 향신료를 런던으로 가져가 고든에게 팔았다고 하자. 송금이나 계좌이체가 없었던 시절이다. 로시는 고든에게서 받은 환어음을 베네치아 은행에 제시하고 이탈리아 돈을 받는다. 그 뒤 고든은 베네치아 은행의 런던 지점이나 그 은행이 지정한 런던의 다른 은행에 대금을 파운드로 입금한다. 이때 환율에 따라 베네치아 은행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은 반대 방향의 거래를 통해 상쇄할 수 있다. 즉, 베네치아의 토티에게 양모를 수출한 런던의 베이커를 상대로 같은 식의 거래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음의 발달엔 종교적 사연도 무시할 수 없다. 중세 교회는 무거운 이자를 물리는 금전거래가 신의 뜻에 어긋난다고 봤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대금(貸金)에는 고리(高利)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12~13세기에는 고리대금업자의 장례식을 기독교식으로 치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이에 비해 환어음은 달랐다. 양쪽에서 동시에 돈을 떼기는 하지만 형식적으로 이자와 다르다. 결제와 융자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획기적 금융 상품이었다. 은행에는 외환 리스크를 줄이는 수단이기도 했다. 당시의 신학자들은 환어음을 매개로 한 거래가 고리대금업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따지는 데 무척 고심했다고 한다. 결국 교황청은 외환 리스크를 감수하는 상행위이지, 고리대금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치사회적 최고 권위체가 당시의 첨단 금융기법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금융 비즈니스가 국제적으로 영역을 넓혀 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배경으로 금융과 상업으로 거부를 쌓은 게 메디치가였다. 그 유명한 르네상스 운동의 후원자다. 메디치가의 은행은 교황청과도 거래했다. 한때 메디치가는 전체 은행 이익의 절반을 교황청과의 거래에서 얻었다고 한다. 교황청의 금융 파트너였던 셈이다.

외신에 따르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근 “지금 큰 은행들이 잇따라 무너지고 있다”며 “성공이나 경력·돈을 추구하는 사람은 (일생을) 모래 위에 쌓아 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의 뿌리가 인간의 탐욕에 있다는 뜻인 듯하다. 현대 금융공학도 도덕적 잣대로 보면 어음만도 못한 고리대금업 수준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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