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주의 깊게 다뤄야 할 ‘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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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가을빛이 완연하다. 문화의 향기도 짙다. 왕년의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듯 6070세대들이 호숫가에 나왔다. 나비넥타이 정장 차림에 열기를 머금었던 악기를 들고서다. 그들의 대화에서 재미가 묻어난다.

ㄱ영감: “ㅂ형, 우리가 연습했던 곡 말이야. 이 부분에선 한 박자 늦춰야 해. 쉼 없이 달려가지 말라고.”

ㅂ영감: “ㄱ씨, 무슨 소리야. 이 노래는 긴장감이 필요해. 여기 이 쉼표는 ‘여유 있는 긴장’을 말하는 거라고. 한걱정 놓으시지.”

ㅎ할머니: “목소리 좀 낮춰요. 한동갑끼리 키 재기 하기는….”

ㄱ영감의 말씀 ‘한 박자’에서 ‘한’은 수량을 뜻한다. ‘노래 한 곡, 국화 한 송이’ 등이 같은 쓰임이다. 띄어 써야 한다. ㅂ영감이 붙여 써 목소리를 높인 ‘한걱정’의 ‘한’은 ‘크다’라는 의미다. ‘한가위·한나라·한밑천’ 등에서도 나타난다. ㅎ할머니가 말한 ‘한동갑’에서의 ‘한’은 ‘같다’의 뜻이다. ‘한집안·한동기·한마음’에서 볼 수 있듯 화합·협동 등을 내포한다. 또 있다. ‘한낮·한복판·한허리’에선 ‘정 중앙’을, ‘한구석·한옆’에선 ‘바깥’을 뜻한다.  

김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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