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언론인 포럼 주제발표-다극화 시대 亞洲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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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백여년간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의 언론은 지극히 서구적인 눈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를 보아왔다.
우리 대부분은 세계의 뉴스를 얻기 위해 해외통신에 의존했고 서구언론은 국제적으로 뉴스를 판매하는 전략을 내세웠다.그들에게는 충분한 기술과 세계 공용어인 영어라는 수단이 있었다.
아시아 언론은 값이 싸고 효율적이라는 장점 때문에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단발성 해외통신 기사들을 국내에 그대로 보도했고 그 결과 서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세계는 변하고 있다.
세계는 다극화(多極化)하고 있으며 국제사회 힘의 중심은 옮겨가고 있다.
자립과 경제적 안정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도 자체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경쟁력을 키우게 됐다.
이제 아시아 언론도 아시아 독자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자체보도할 시기가 온 것이다.
외국 통신사들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보내준다.각 지역의 필요성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하고 있는 신문만 해도 보스니아 내전보다는아시아 신흥경제국에 대한 보도를 더 많이 받았으면 한다.
또 그들의 아시아에 대한 보도에서도 미흡한 점들이 발견되곤 한다.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대만해협에서의 중국 무력시위건만 해도 그렇다.우리는 홍콩과 대만의 언론보도를 주시하면서 해외통신에는 실리지도 않은 중요한사실을 여러가지 발견해냈다.아시아내의 중국 전문가들과 홍콩.타이베이(臺北).베이징(北京)특파원들도 도움이 됐 다.이들을 통해 만들어낸 기사는 해외통신에만 의존해서 만들었던 기사에 비해훨씬 우수했다.
우리가 직접 쓰는 아시아 기사는 우리의 시각을 넓혀줄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외신을 인용할 때는 조심하라고 말한다.특히 정치권 내부의 문제나 덩샤오핑(鄧小平) 사후 권력체계에 대해서는 외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권력체계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읽은 한 중국전문가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중국학을 전공한 대부분의 서양 기자들은 내면보다는 표면에 드러나는 것을 통해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한다.그래서 때론 중국의 정치.외교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곤 한다.』 아시아의 경제.정치.문화적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보도의 양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서구가 아시아에 대한 보도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고,그것도 자신들의 언어로만 기사가 작성되는한 당분간 아시아 언론들이 해외통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현재로서는 이보다 효율적이고 값싼 취재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아시아 언론 스스로가 아시아 취재에 나서는 것이 비록 비용면에서 부담이 되더라도 가장 바람직하다.
아시아 언론에 아시아 뉴스가 부족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아시아는 뉴스가 넘쳐나는 곳이며 앞으로는더욱 다양한 일이 벌어질 곳이다.서구의 아시아 보도에 지속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이 땅에 대한 권리를 서구에 넘겨주는 것과다름없다.
아시아 언론이 제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건 패배를 뜻한다.아시아 경제가 발전할수록 우리의 독자는 세계화되고 지구촌은 마치 하나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다.
나는 서구의 뉴스 공급자들이 아시아에 대한 보도를 늘려줄 것을 부탁한다.
BBC만 해도 동아시아 시청자를 위한 뉴스를 특별 제작한다.
우리 신문의 독자 다수가 국제 뉴스를 듣기 위해 BBC를 시청한다.미국의 CNN.NBC도 유사한 경영을 시도중이다.아시아판월스트리트저널.런던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아시아에서 신문을 인쇄해 아시아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인터넷의 여러 신문들도 아시아의 비중을 높여 보도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뉴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직접 보도하지 않는다면미래의 우리는 서구언론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아시아의 발전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역사에 길이 남 을 일이다.
[정리=김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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