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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자산 인플레와 과소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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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의 웬만한 집은 억대가 넘는다.주기적인 부동산가격 폭등결과다.자기집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억대자산가가 됐다.여기에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아파트 분양제도와 1가구1주택에 대한 양도세면제가 큰 몫을 했다.소형 아파트에서 중대형으로 의 상향이동과정에서 생긴 상당한 양도차익과 부동산값 상승이 수많은 억대자산가를 만들어낸 것이다.물론 자기가 살아야 하는 집 한채만 달랑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산은 아니다.자산인플레요,거품이다.
그러나 「나도 집 팔면 억대자산가」라는 뿌듯한 심정은 갖게 됐다.이같은 중산층이 늘어난 것은 사회의 안정이란 측면에서 바람직하기도 하다.그들에게는 이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사회」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산인플레가 가져오는 폐해 또한 적지 않다.전국민의부동산투기(投機)꾼화,빈부간 갈등 증폭,거품의식 만연에 따른 사회 전체의 고비용화란 결과를 가져왔다.땅이나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 합법적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사회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장기적으로 보면 최소한 금리이상은 부동산 투자에서나오니 말이다.
그런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를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부동산처럼 안전한 투자가 없기 때문이다.이제 부동산을 사는 것은 투기가 아니라 투자(投資)가 됐다.투기는 이익도 많은 반면위험부담도 클 때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이다.잘못 된 부동산 정책의 결과다.
또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과 자산인플레는 노동의 참맛을 앗아갔다.허파에 잔뜩 바람을 넣어 과소비를 야기시켰다.억대자산가의 양산은 돈 몇백만원쯤은 우습게 여기는 풍조를 만연시켰다.집 한채만 달랑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 는 더욱 그렇다.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생긴 불로소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근로의 참맛을 모른다.대낮에도 골프장이나 골프연습장은이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돈은 어떻게 써야 한다」는 규범이 없다.거품의식의 만연은 임금.서비스요금 등 모든 면에서 인플레를 야기시켰다.최근의 무분별한 호화사치여행이 나 산업공동화등도 따지고 보면 거품의식의 만연에서 비롯된 것이다.땅값과 임금이 크게 오르니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3고(高)」사회가된 것이다.결국 기업들은 하나 둘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
한편 부동산가격 상승에 신나는 층이 있는 반면 집없는 서민은분노로 몸을 떤다.32%나 되는 서울의 무주택가구가 부동산가격상승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난다.불로소득으로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을 보는 사 람들의 심정이 고울리 없다.이들에게 사회정의는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땀흘려 노동을 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탓이다.
그런데 최근 전세값이 또 크게 올랐다.매매가의 70~80%선까지 육박했다.이는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정부는 부랴부랴 전세값을 20%이상 올린 자에 대한 세무조사,중개업소 단속,임대주택 활성화 등을 대책이 라고 내놓았다. 문제는 이들 대책이 부동산가격 폭등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요,미봉책일뿐이라는 점이다.정부의 대책발표 후에도 전세값은오르고 있다.
전세값 상승의 근본원인은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68%라는 사실에서 보듯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그렇지만 주택부문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출비율은 89년 2.3%에서 95년 0.6%로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흔히 외국은 주택이 주거수단이지 재산증식수단이 아니라며 한탄하는 말을 한다.그러나 이는 주택보급률 1백% 사회에서나 해당되는 말이다.정부의 과감한 재정지출 확대없이 주택이 주거수단이되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 수 없다.주거안정없이 사회안정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석구 (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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