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프라다 “서울 이미지 바꾸어 놓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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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년 3월 27일 서울 경희궁에 설치될 프라다의 ‘트랜스포머’ 조감도.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의 설계로 지어질 예정인 이 건물은 각기 다른 4개 면이 패션·미술·영화·문화 무대로 사용된다. [프라다 제공]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명품의 대중화 바람은 명품백 한번 사지 않은 소비자들도 명품 브랜드 이름 서너 개쯤은 알도록 만들었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섹스 어필을 주제로 한 과감한 광고 전략과 물량 공세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전략에 소비자들이 조금씩 지쳐가는 것을 아는지, 최근 명품업계는 ‘전통과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마치 원조 경쟁이라도 벌이듯 ‘~백년 전통’으로 돌아가는 이 시점에 특이한 행보를 보이는 명품 브랜드가 있다. ‘미래’를 고집스럽게 전략으로 삼고 있는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PRADA)다. 프라다가 미래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서울이다.

 #명품, 서울에서 미래를 찾다

지난달 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난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렇게 말했다.

“수준 높은 부산국제영화제(PIFF), 유럽에서 유명한 한국 영화감독,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편집 매장 ‘10 코르소 코모’의 서울 지점, 세련된 취향의 소비자들, 국제적인 수준의 미술 전시를 여는 많은 갤러리, 리움 같은 미술관….”

창업주 마리오 프라다의 외손녀이기도 한 미우치아 프라다의 한국, 특히 서울에 대한 관심은 끝이 없었다. 프라다는 내년 서울 경희궁 앞에 세계 건축계의 거장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특이한 건축물을 짓는다. 프라다의 예술 총감독 제르마노 첼란트는 서울에 세울 건물에 대해 “우리의 프로젝트는 미래를 향하고 있다”며 “많은 브랜드가 전통을 앞세우지만 우린 혁신(innovation)과 미래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프라다가 미래를 강조하는 것은 특이하다. 전통과 역사가 빈약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13년 마리오 프라다에 의해 탄생한 이 브랜드는 이탈리아 왕가의 공식 지정업체였다. 또 첫 매장이 유럽 최초의 근대적 상업 시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건물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을 만큼 내세울 만한 유산도 있다. 미우치아는 “내가 보기에 요즘 명품 브랜드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전통에 집착한다. 과거의 자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좋지만 우린 늘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프라다의 홍보담당 이사인 론가네지는 국내 소비자에게 ‘낙하산 천’ 또는 ‘프라다 천’으로 알려진 ‘테수토’의 미래에 대해 설명했다. 테수토는 78년 프라다가 개발한 나일론 섬유의 이름이다. “(전통적인) 실크보다 더 새롭고 세련된 느낌의 소재가 필요했다”는 론가네지의 설명에 호응이라도 하듯 테수토로 만든 백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는 “여전히 프라다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독특한 소재처럼 우리의 전략은 언제나 미래를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스타일 명품 이미지 업그레이드

미우치아의 전폭적 지지 아래 진행된 프로젝트의 이름은 ‘트랜스포머’다. 변신 로봇을 주제로 한 만화영화에서 따온 이름처럼 렘 쿨하스의 건물은 4개의 주제인 패션·영화·미술·문화에 맞춰 변신한다. 각각 원, 십자, 사각형과 육각형의 4개 면은 패션쇼 무대가 됐다가 영화 관람석이 되기도 하고 미술 전시회 공간으로도 변할 예정이다. 내년 3월 27일 시작하는 트랜스포머는 넉달에 걸쳐 진행된다.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가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서울에서 여는 것은 처음이다.

쿨하스는 “건축은 늘 미래를 향한다. 새 건물이 들어서면 주변 지형이 바뀌는 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변하는 건물을 보면서 서울 시민들이 도시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을 만큼(up-side down)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랜스포머는 변화가 주제다. 미래는 곧 변화다. 경희궁이라는 역사적인 건물 앞에서, 안에서만 변해왔지 겉은 그대로인 건물 앞에서 우린 또 다른 미래, 속뿐 아니라 겉면도 변하는 세계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서울처럼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프라다의 관심이 서울에 쏠려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홍인수(에스모드 서울 패션디자인 스쿨) 교수의 분석이 흥미롭다.

“창작을 위한 새로운 영역에는 늘 자극이 필요하다. 일본은 이미 널리 알려졌고, 중국은 너무 넓어 어지럽다. 서울은 현대와 미래가 뒤섞여 있는 데다 서구에서는 여전히 궁금한 대상이다. 게다가 우리 문화 수준이 디자인과 창의성에 대한 존중으로 가고 있지 않나. 일본의 이미지가 명품 브랜드를 통해 더욱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도 이제 시작 단계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

명품 브랜드가 한국에서 미래를 찾고, 한국의 이미지도 그들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밀라노(이탈리아)=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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