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이대론안된다>1.문제투성이의 감사대상 기관 선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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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기국회는 오는 30일부터 국정감사에 들어간다.국정감사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비판함으로써 국정을 올바로 이끌어 가도록 하는 중요한 제도다.그러나 국정감사는 이같은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잡음과 말썽을 빚어온 것도 사실이다.무분별한 자료요청과 중복감사로 행정부가 마비되고,언론을 의식한 한건주의가 판치는가 하면 의원들을 상대로한 로비공세가 펼쳐지기도 했다.국민 대표기관의 올바른 국정통제라는 국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현재의 국감이 안고 있는 각종 문제점들과이에 대한 대안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註] 국정감사는 감사받을 대상기관 선정에서부터 출발한다.그것이 국감의 첫 단추인 셈이다.그러나 우리 국회의 국감은대상기관 선정이라는 그 첫 단추부터 꼬여들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끊이지 않는다.
제15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물이 좋다」며 기를 쓰고 들어가려고 해 물의를 빚었던 건설교통위.이 상임위는 지난해 국감때 33개기관을 감사대상으로 선정했다.
건설부.철도청.해운항만청에 주택공사.수자원공사.공항공단.교통안전공단.대한건설협회.건설공제조합….한결같이 맡은 일이나 규모가 「어마어마한」 곳들이다.감사원의 전문인력들이 투입돼도 감사에 최소한 며칠씩은 걸리는 기관들이다.
그러나 건교위는 지난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 33개기관의 감사를 20일의 국감기간에 다 「해치웠다」.지방을 돌고 쉬는 날을 빼면 하루평균 2개기관 이상을 속사포처럼 감사했다.
건교위만 그런게 아니다.재경위 34곳,문체공위 37곳,통상산업위 37곳,환경노동위 25곳.지난해 각 상임위들이 국정감사를했던 기관들의 숫자다.제14대 국회 4년간 감사대상에 선정된 전체 기관수가 1천3백35곳이니까 국회는 한해에 3백33곳의 기관을 감사한 셈이다.
지방출장 국감은 부실의 극을 달린다.
『대상으로 선정됐으니 질문은 해야 하는데 지방기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보좌관을 시켜 지방신문에 나온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게 한뒤 「이렇게 해서야 쓰겠느냐」고 고함 한번 치고 오는 부끄러운 일도 많습니다.』 신한국당 3선인P의원의 말이다.그는 『의원들로선 오전엔 마산,오후엔 부산식으로 옮겨다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라고 고백했다.
또다른 사례를 들어보자.외무통일위의 경우 국감때면 외국 주재한국대사관들을 A조와 B조로 나눠 감사한다.그렇다면 누가 어느조에 속하는지는 어떻게 결정할까.
『해당의원이 유럽에 안가봤으면 유럽쪽으로,동남아에 가고 싶으면 동남아 순방조로 결정하는게 일반적이죠.어차피 가봐야 대사관에서 보고나 받고 관광이나 하다가 오는건데 무슨 조에 속하든 상관없어요.』 14대 국회때 의원보좌관을 지낸 C씨의 말이다.
정상감사가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데도 국회가 그토록 많은기관을 무더기로 선정하는 이유는 뭘까.
국감을 2주일쯤 앞둔 요즘 여의도의 국회 의원회관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올 국감에서 감사대상으로 선정된,혹은 선정될 가능성이 있는 행정부처와 산하기관에서 줄줄이 찾아와 해당상임위의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 다.의원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감사대상기관 숫자와 정비례하게 마련이다. 여당 중진 A의원은 『올해는 국감직전에 추석까지 끼어있어예년보다 더하다』고 했다.
14대 국회에서 의원보좌관을 지낸 김광동(金光東.정치학박사)씨는 무더기 대상기관 선정의 이유를 「권력과시와 이해(利害)관계」라고 규정했다.
『무엇보다 누가 칼자루를 쥐고있는지를 보여주려는 성격이 강하죠.가능하면 더 많은 기관에 힘을 과시하는 거죠.두번째는 이해관계입니다.본인은 물론 자신의 주변사람과 관련이 있는 기관은 다 포함시켜 물고 늘어집니다.그러면 반대급부가 나 오게 돼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의원들이 다 그렇게 오염된 것도 아닐테고감시와 지적이 필요한 기관들도 많을 것이다.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대상기관이 무더기로 선정되고 있고 그와 정비례해 국감내용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다.
당지도부가 의원들에게 특정기업과 기관을 찍어서 감사하라고 지시하는 폐습도 우리 국감이 극복해야할 큰 과제다.
국정감사의 문제점을 책으로도 써냈던 이철용(李喆鎔)전의원은 『당지도부가 이번엔 A기업.B제약회사를 좀 건드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그러다 정작 문제를 삼으려고 하면 『이젠그만하라』고 말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
李전의원은 『국감이 정당의 정치자금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야당의 재선 李모의원은 『94년 모기업의 비리를 폭로하려는데당지도부에서 이를 극구 말려 난처했다』고 고백했다.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목청만 돋우는 「엄포 국감」을 개혁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정감사 대상기관의 선정에 끼어드는 각종 사(邪)부터 제거해야 한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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